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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공부⑥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시편51:6~9, 마태6:14~15
신앙생활 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힘들었던) 게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고 했는데 복은커녕 쪽박 차게 생겼다고 합니다.(복의 문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은 다 하는데 나만 방언을 하지 못하니 속상하고 창피하다고 합니다.(은사의 문제) 어떤 사람은 무조건 죄인 취급하는 교회의 분위기가 싫다고 합니다.(구원의 문제) 또 어떤 사람은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봉사의 문제) 정직하지 못하고 욕심 많은 교인들을 만난 때,(인간관계의 문제) 가장 신앙생활 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때 견디기 어렵고 힘드십니까? 나는, 누구를 용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서하기 싫은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할 때 가장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나에게 “내가 너를 용서한 것같이 너도 그를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일흔 번 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 하시며,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용서)하라 하십니다. 순종하고 따르기가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우리가 받들기 민망한 말씀까지 하실까요? 용서해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하셨습니다. 땅에서 매인 것을 풀어야 할 곳은 땅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나의 수고와 인내를 견디지 못해, 또 힘이 드는 게 싫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곧바로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땅에서 일어난 일은 땅에서 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믿음과 기도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전가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서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힘들지만 참고 외면할 수는 있어도 용서는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예수님은 용서에 대해 구체적인 예화를 들어 가르치십니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습니다. (일만 달란트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액수를 뜻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왕에게 불려나와 이렇게 사정을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내 아내와 자식들까지라도 다 팔아서 빚을 갚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왕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길을 가다가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를 만나자마자 멱살을 잡고 빨리 빚을 갚으라고 화를 냈습니다. 이를 본 왕의 하인들이 왕에게 그 일을 알렸습니다. 왕은 몹시 화가 나서 그 사람을 다시 불러들여 호통을 쳤습니다. “이 못된 놈아,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너한테 빚진 사람을 불쌍히 여겼어야 옳지 않느냐?” 그리고는 그 못된 인간을 감옥에 가둬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고, 나의 생명이 파멸에서 구원받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이런 은총을 받은 사람답게 너희도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남을 찌르고, 나누고, 판단하는 날카로운 것을 거두면, 상대방의 날카로움도 무뎌지게 마련입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대할 때라야 얽힌 것들을 풀어내는 길이 열립니다. 우리 속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마음의 빗장을 열고 상대방을 바라볼 때, 용서는 이미 시작된 것이며, 얽힌 것들을 풀어내는 인내의 과정을 통해 화해와 용서의 내용이 갖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불쾌한 사람을 참아주어야 하는 까닭은, 누군가도 불쾌한 내 모습을 참아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참아내고 남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하는 까닭은, 누군가도 나의 허물을 참아주고 덮어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끝없이 기다리고 사랑해야 하는 까닭은, 누군가도 나를 끝없이 기다려주고 사랑해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해야 하는 까닭은 누군가도 나를 용서해주었기에 그 빚을 갚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남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배워도 남보다 더 배웠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더 연장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덕’이요 ‘진리’입니다. 그 진리 가운데 살면서 덕으로 그 내용을 채워가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기도문의 핵심은 사람과의 관계가 올바른 사람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올바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웃과 원한을 품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없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다가 어떤 형제나 자매가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먼저 가서 그 형제나 자매와 화해한 다음에 제물을 바쳐라.”(마5:23) 하셨습니다. 형제와 원한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나 헌금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용서 받은 자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죄 사함의 확증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죄의 진흙탕 속에 머물러 있는 우리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간절함으로 기도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먼저 남의 죄를 용서하기 전에는, 내가 용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며 살아가는 한 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이미 아버지께 다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으며 자유인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오늘의 현실에서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간절히 바라오니, 주님의 십자가 은총의 빛 아래 살아가는 우리가 먼저 용서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