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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로마 15:25~33) - 로마서 묵상 43 지금 바울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꺼이 연보(捐補-구제금)를 했는데, 그것을 전해주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여유 있는 이들이 모자라는 이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 가난한 백성의 재물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의 기름진 배를 채우는 것이 폭군의 길이라면, 그들의 창고를 열어 가난한 이들을 먹이는 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 폭군의 길은 자연의 도를 어기는 길이기에 오래 가지 못하고, 예수님의 길은 자연의 도를 따르는 길이기에 계속될 것입니다. - ‘성도’(聖徒)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한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스스로 거룩해서 거룩한 무리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기에 거룩해진 무리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자신에게 스스로 쓰는 데는 어폐(語弊)가 있습니다. 25~27절 :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것(복음)을 나누어주었으니 이방인들이 육신의 것(돈)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는 얘기입니다. 신령한 것도 육신의 것도 모두 하나님한테서 나온 것입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전하는 자도 전해지는 물건도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일에 ‘사람’이 주인 노릇을 할 틈이 없습니다. -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억지로가 아니라) 기쁘게 하는 사람은 그로써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28~29절 : “내가 이 일을 마치고”는 모금을 마친다는 뜻입니다. ‘열매’는 모금된 돈이고,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는 “그들에게 확실히 전달한 후에”로 읽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주선하면서 초대교회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인,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 사이의 불화를 해소하려 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31절 하) 하기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탁한 것으로 보아, 바울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돈을 받지 않을까,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최종 목적지가 로마가 아니라 서바나(스페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로마 교회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을까요? 아울러 바울은 자기가 로마에 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것으로 안다(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을 가지고 가겠다고 약속하지 않고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안다)고 말한 이유는 종이 주인의 행세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의식 속에서조차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 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만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30절 : 다른 번역 성서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령의 선물인 사랑에 의하여, 나의 몸부림에 동참하고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려 주기를 간청합니다.” 사도가 신도에게 기도와 협력을 간청합니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아름답고 듬직한 모습입니다. 31~32절 : 같은 구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유다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화를 입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구제금이 그곳 성도들에게 기쁜 선물이 되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을 찾아가 함께 즐거운 휴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31절, “유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유대에 있는 비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이들 모두가 알게 모르게 불신자들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물론 박해자들이 유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유대에 (있는)”라고 말한 것은 자기가 지금 유대로 가는 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이 부탁한 또 다른 한 가지는, 유대에 있는 성도들이 구제금을 잘 받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하나 됨이 완전히 입증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성도들이 헌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헌금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의 걱정은 그와 예루살렘 교회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바울이 그 이유를 여기서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의 하나 됨을 방해하는 적대 세력이 헌금을 거절하도록 부추길 위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력은, 이를테면 옐살렘 공의회에서 바울의 사도직을 반대했던 거짓 형제들(갈2:4)과 비슷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헌금을 잘 받아들이도록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로마 교회에 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선물이란, 주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받는 쪽에서 받지 않으면 줄 수 없는 게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을 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33절 :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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