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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FAQ - 민영진] 참조 성경에서 자주 묻는 질문들 1 지난 성탄절 예배에서 교독문 119번을 읽었는데,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특히 이사야 9:6~7에서,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사’라는 말도 모르겠는데, 지금 갓 태어난 어린 아기가 어깨에 메는 정사는 또 무엇입니까? ‘기묘자’라는 말이 무엇인가 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는데, 그런 말은 국어사전에는 나오지도 않더군요. ‘모사’는, 한때 ‘사기꾼’ 같은 말을 좀 누그러뜨려 완곡하게 표현할 때 ‘모사꾼’이라고 한 것 같은데, 바로 그런 모사꾼을 가리키는 것인지요? 또 아기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니,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느니, ‘평강의 왕’이라느니 하는 것은 말은 어렵지 않은데, 뜻이 너무 어마어마하여 제가 과연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번역이라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어쨌든 이사야 9:6~7의 해설을 부탁드립니다. - 서울에서 이 아무개 장로 이 구절은 장로님에게만 어려운 구절이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신학자에게도, 성서학자에게도, 그리고 성경 번역자에게도 해설하기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이 본문은 그 자체로 대단히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사야서의 본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사야 9장 6~7절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에서 ‘정사’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무려 스무 개가 넘는 올림말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본문의 것은 중간쯤 나와 있는 ‘정사’(政事)입니다. 정치 ‘정’(政) 자에 일 ‘사’(事) 자를 쓴 것으로, 정사란 ‘정치상의 일’ 곧 정치(政治)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를 어깨에 메었다는 표현은 우리말에서 흔한 표현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중책(重責)을 짊어지다.”라는 표현을 상기하시면 이 말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기는 정치가로 혹은 통치자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장차 그 아기가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기묘자’는 아예 사전에도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기묘’(奇妙)는 문자 그대로 기이할 ‘기’(奇) 자에 묘할 ‘묘’(妙)자를 쓴 것이니까, ‘기이하고 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묘자’란, ‘기이하고 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모사’(謀士) 역시 올림말이 여러 개 나오는데, 본문의 것은 꾀할 ‘모’(謀) 자에 선비 ‘사’(士) 자를 쓴 것으로, “일을 꾀하여 처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하고 묘한 것은, 여기에 사용된 표현이나 용어의 뜻보다는, 바로 우리의 구세주로 오시는 그분이, 무엇보다도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어서 사람이 성장하는 절차를 그대로 밟아, 우리처럼 살아가는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갓 태어난 어린 아기, 산부인과의 간호사가 받아 들고 보여주는 갓난아기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이 세상에 노출된 생명입니다. 어머니나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의 오랜 보살핌과 양육이 없이는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하는 나약한 존재, 의존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구세주께서는 바로 그런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아이들이 자라듯 그렇게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분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우리 주님께서 아기가 됨을 경험하셨기 때문이고, 우리가 어머니를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우리 주님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또 그의 이름이 한두 가지도 아닌, 네다섯 개나 되는데, 그 이름들마저도 보통 작명 과정에서 나오는 이름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기묘자‘(奇妙者), ’모사’(謀士),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 등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들이, 어디 사람에게 붙을 수 있는 이름입니까? 더욱이 여인의 태를 통하여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그 아기의 이름이 ‘하나님’이라니요?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의 이름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니요? 왕궁에서 나기는커녕, 오히려 가축의 구유에 태어난 평민의 아들이 ‘평화의 왕’이라니요? 구약에서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이의 본질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주님은 아기이고, 아버지이고, 왕이고, 하나님입니다. 구세주로 오시는 아기를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하는 점에서는 이사야뿐만 아니라 신약의 요한복음서도 대단히 자극적이고 도발적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 (요 1:18, 새번역)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요 20:28, 새번역)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그 참되신 분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 참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이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요일 5:20, 새번역) 우리가 이사야 9:6~7의 이 어마어마한 본문의 뜻을 한꺼번에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란 분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의 생애 동안 계속하여 묵상하자는 뜻에서 이 본문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이 말씀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가 누구이신지요? - 그가 누구이기에 우리는 평생 그에게 붙잡혀 있는 것인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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