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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길을 처음 시작한 게 1997년 경기도 파주 금촌에서였으니까 올해로 24년째가 되었다. 어림으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인도한 장례식이 2백 회쯤 된다. 그렇게 많은 이유는 10년 가까이 부목사로 섬겼던 교회들이 모두 오래된 교회였고, 그래서 노인들이 많았던 때문이다. 어쨌든 2백여 명의 교우들을 보내면서 빠트리지 않고 전했던 말은, ‘우리의 인생은 이것(죽음)으로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남은 이들을 마음을 다해 위로하려 했다. 또 신촌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모집하고 훈련하는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이들과 가졌던 짧은 경험들이 나를 ‘장례 전담 목사’로 불리게 했던 것 같다. 나의 이런 경험들을 부러워하는 동역자들도 있을 텐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저마다 사역의 내용은 다르고 또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한 권의 책을 들고 죽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까지 인도한 장례식과 교우들의 죽음은 다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죽음은 어떠해야 하는가, 또 나아가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주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설렁설렁 읽었던 이 책을 한 번 더 읽게 됐고, 이번엔 정독했다. 책을 다 읽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고, 한 가지 숙제가 생겼다. 의문은, ‘우리 사회가 제도만 갖춰진다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숙제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 바이러스와 싸우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지독한 소외 속으로 던져진 채 한 줌의 재로 돌아온 죽음은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이 죽음은 모든 게 복합되어 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환자의 자발적 요구로 코로나 중증치료센터에 들어가 의사의 도움을 받다가,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다가 환자의 자발적 요구를 말할 사이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고, 이어 유족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화장되는 과정이 결코 자연적인 죽음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죽음 형태가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새롭게 태어났다는 점이 나와 우리의 숙제가 됐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개인적인 바람은 이 책의 저자께서 죽음에 관한 강연 중에 이 새로운 죽음의 형태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시기를, 이 책의 속편에는 그 부분도 다루어 주시기를 바란다. 결국에 모든 죽음은, 결코 이물스러운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함께 읽고 ‘죽음’에 관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고민한다면, 그 필요한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