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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로마 8:1~11) - 로마서 묵상 23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시어 바울을 ‘사망의 몸’(죄를 지어 죽게 된 몸)에서 건지셨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설교하고 있는 저를 ‘사망의 몸’에서 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듣고 있는 여러분을 위해서였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아 아는 순간,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보물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보물인 줄을 모른다면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 겁니다. 1~2절 : 이 잔에 담겨 있는 물을 마십니다. 제가 마신 물은 내 안에 들어오면서 곧장 ‘나’로 됩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에게 삼켜진 사람이요 그래서 마침내 예수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정죄(定罪)함이 없습니다. 예수에게 삼켜져 예수로 된 자는 죄를 범하고 싶어도 범할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는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있어서 그것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더 이상 정죄함이 없는 것은 내가 삼가고 조심하여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와 내 모든 행실을 삼켜 당신 것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삼켜진 자보다 삼킨 자가 더 큽니다. 나보다 예수님이 더 크십니다.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나 자신이 그분보다 더 크게 행세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정죄 받지 않는 자의 복을 결코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요3:30)고 말할 수 있었던 세례자 요한은 과연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비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3~4절 : 누구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내지 못합니다. 육신의 한계 때문입니다. 율법을 완벽히 지키면 살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육신의 한계(약함)를 벗고 죽음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길은, 성령을 살리고 육신을 죽이는 길입니다. (육신을 죽인다는 말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앞에서 꺾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그분에게 삼켜져 그분과 한 몸을 이루면, 그에게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이루어집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는 순간,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靈)을 따라서 행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완전하게 변화된 이 시대의 성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5~6절 : 사람의 육신은 본래 흙으로 빚어진 것이라서, 천하장사 항우(項羽)라 해도 그 육신은 끝내 한 줌 티끌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나 영(靈)은 본래 하나님의 것이라,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은 육신의 일밖에 모릅니다. 돈 버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돈으로만 보입니다. 반면에 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영의 일만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 인간의 생애는 그 사람이 평소에 생각하는 바의 결실입니다. 좋은 생각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생각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모든 게 마음(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7~8절 : 육신은 누구의 육신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그 육신이 바라는 것은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마가14:36)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 그 마음에 드는 아들(마가1:11)이 되신 것은, 육신의 생각을 지우고 그 자리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에 머물러 있는 한,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분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종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생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9~11절 : 육신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과 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요? -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은 영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육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머무시는 거룩한 집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집을 강도의 소굴이나 철옹성 같은 감옥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참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제 속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를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자기 몸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 가능한 일은 모든 사람에게도 가능합니다. 단, 너와 나를 구분 짓는 육신의 법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이 원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영의 법’은 통일이요, ‘육신의 법’은 분열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법을 따를 것입니까? - 우리의 생사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