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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24-07-06 (토)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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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몸에 여러 지체 (로마 12:4~13) ”

 

한 몸에 여러 지체 (로마 12:4~13) - 로마서 묵상 35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견주어 설명한 것은 바울의 뛰어난 지혜입니다. 몸은 생명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하고, 세월과 더불어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겉이든 속이든 굳어진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생명은 열려 있음이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진 사람은 그로 인해 교회의 한 지체(肢體)가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교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처럼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관계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천국 시민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자리에서 교회론을 먼저 꺼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4~5 : 몸은 하나인데 그것을 이루고 있는 지체는 여럿입니다. 하나가 여럿이요, 여럿이 하나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존재의 신비입니다. 한 몸에 여러 지체인데, 그 지체들은 서로 배타할 수 없는 운명을 지녔습니다. 어느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배타한다면, 그건 스스로 자기를 배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어떤 명분으로든 한 구성원의 독재(獨裁)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유일하게 허용되는, 허용이라기보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독재는, 교회 자체이자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독재입니다. 누구도 그분의 뜻에 이의(異議)를 달거나 그분의 명령을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과 더불어 교회 일을 의논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있을 수 있고 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순명(順命)뿐입니다. 그분의 명령(命令) 앞에서 모든 지체가 자신의 의지를 죽여야 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위대한 목사라고 해도 교회에서 독선을 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목사는 그리스도의 종이지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6~8 : 은혜도 은사도 모두 주는 이의 마음입니다. 받는 쪽은 그것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받을 것이냐 거절할 것이냐, 그것을 결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일단 받기로 결심하였으면,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를 남이 받은 은사와 비교해서 우쭐거리거나 시샘을 한다면, 이것은 은사 받은 자의 마땅한 태도가 결코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에게 아무런 은사를 주시지 않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자기가 무슨 은사를 받았는지 모른다면, 그것은 은사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은사를 받아들일 줄 몰라서입니다. ‘예언을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는 말, 두 가지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믿음만큼 예언을 하라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베푸신 신임의 정도에 따라 예언을 하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읽든, 하나님이 일러주신 것만을 겸손하게, 마지못하여 예언하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이런 태도는 예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치유의 은사를 받은 자가 자기를 세상에 선전하며 스스로 무슨 대단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말 딱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은사를 받은 자는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 됩니다. 혼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아무리 동기가 좋아도 욕심이 앞서면 나쁜 결과를 내기 마련입니다. 과욕은 마치 마이너스 부호 같아서 어떤 것 앞에 붙여도 그것의 가치만큼 역효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9~13 : 사랑에 거짓이 없다는 말은, 사랑을 거짓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9절 앞부분을 예루살렘 성서는 이렇게 옮겨놓았습니다. “그대의 사랑이 겉치레가 되지 않게 하시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믿는 사람입니다. 달리 말하면,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도 거짓으로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 앞에서 속임수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추거나 은밀하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감춘다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하신 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원(二元) 구조로 되어 있는 상대적인 세상에서는,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따로 없습니다. 형제라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래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픈 다리를 손이 두드려 주고, 손에 박힌 가시를 눈이 찾아내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사랑은 주고받는 것, 받는 사랑이 없으면 주는 사랑이 없고, 주는 사랑이 없으면 받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는 사랑이 먼저입니다. 주고받는 것이지 받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먼저상대를 사랑해야 합니다. - 소망 중에 즐거워하기, 환란 중에 참기, 기도에 힘쓰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기, 나그네 대접하기,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행동 강령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관념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행위를 뒤로한 채 믿음만을 강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오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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