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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인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부족마다 아브라함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간직했습니다. 창세기를 쓴 분은 그것들 중에 필요한 대목을 모아서 아브라함에 관한 전체 이야기를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서기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성서를 읽을 때는 언제나 이런 생각을 마음에 담아두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라와 하갈, 두 여인 중에서 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하갈을 남편의 씨받이로 받아들였다가 구박을 했고,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인정하기 싫어서 쫓아내려한 사라에게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 주려는 게 아닙니다. 본문의 관심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냐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가요?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약속과 그 성취의 차원에서 본다면, 도덕적으로 사라가 옳은지 하갈이 옳은지에 대한 생각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성서기자는 지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길만 따라가고 있으니까요. 브엘세바는 바로 하갈과 이스마엘이 물이 떨어져 죽어가고 있는 땅입니다. 한쪽은 새로운 협상으로 사업이 번창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다른 한쪽은 죽기 일보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이런 일이 바로 인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었던 아브라함도 이런 역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역사적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역사를 비열하게 이끌어가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역사를 세우십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복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통한 이 세상의 구원에서, 절대로 한눈을 팔지 말고 제 길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창세기 21: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