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7-09-30 (토) 20:46
ㆍ추천: 0  ㆍ조회: 548      
http://slowstep.org/home/?slowstep.1628.21
“ 올바른 선생이 되기 위하여 ”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손에 쟁기를 잡은 자’(누가9:62)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인류의 쟁깃날로 오신 주님은 뼈대만 남은, 숨 쉴 틈조차 없는 바리새적인 경건의 품에서는 어떤 생명도 자랄 수 없음을 꿰뚫어보셨습니다.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관행은 언제나 독이 되어 우리를 정신이 나태한 사람으로 만들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속박이 되어 다른 이의 마음까지 옭아매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굳은 마음 밭을 갈아엎는 쟁깃날이고, 얽매임을 끊어내는 정신의 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딱딱한 율법 조문을 이제 던져버리면 됩니까? 모세도 십계명 돌판을 내던졌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무엇이냐고요? 이게 자유라고요? 마음대로 해도 된단 말입니까? 은총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는데, 율법이라는 누더기는 벗어버리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가 어느 정도였기 예수님은 지금 그들을 두둔하는 것일까요? 서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율법)을 지키도록 이끄는 역할을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사소한 데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정확하게 지키는 전통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문화와 전통을 정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율법의 참 뜻을 보여주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엄격한 삶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義)입니다. 물론 이것은 외적인 행위 규정을 더 철저하게 지키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핵심은, 우리 영혼의 중심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거룩한 소명입니다. 훌륭한 성도란, 또 부모란,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준행하는 것입니다.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마태복음 5:17~20)

 

   
  0
3500
가르침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치셨나요? 성경을 가르치셨지요.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란, 유대인들의 구약(율법서)을 말합니다. 그럼,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이 무엇인가요? ‘회개하고 복음(하나님의 뜻)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해 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들은 당시 다른 선생들(랍비, 율법학자, 바리새인, 제사장)도 똑같이 했던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들과 달리 사람들로...

 [2017/09/23 19:48]
죄로부터의 자유
세상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무엇을 바랄까요? 언뜻 생각해 보면, 기독교인의 삶도 일반적인 세상살이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세상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자기를 숨기며 살아갈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이 세상과 구별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세상과 구별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의로움이나 경건성이라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

 [2017/09/16 19:31]
모험적인 신앙
본문에서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봅니다. 첫 번째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모험적인 신앙’을 갖고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나머지 정탐꾼 열 명과 같이 메뚜기 의식에 사로잡혀 겁을 내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부정적인 면만 바라보고 낙심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에 온전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그곳에는 ...

 [2017/09/09 19:19]
산상수훈 8
우리가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그가 전적으로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행동과 태도가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한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내 마음의 한 구석에는 알게 모르게 그의 행동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그런 우리에게 도무지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옳고 그름에 눈감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중간을 택하여 다른 사람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

 [2017/09/02 18:23]
산상수훈 7
정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하다는 게 성서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행복도 그렇고 거룩함도 그렇고 착한 일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참된 행복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행복한 겁니다. 진짜 행복은 몸으로 경험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행복한 줄 모르는 게 진짜 행복이란 말입니다. 거룩함도 그렇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거룩함을 의식하는 순간 그것은 혼자만 의로...

 [2017/08/26 19:56]
새 시대를 열어가는 교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새 시대는 단순히 통일이 되고, 민주화가 되고, 복지사회가 되고, 국민소득이 몇 만 불이 되는 사회만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확신하는 사람들, 보증이나 기적이 일어나야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들, 어떤 상황에서도 권세에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런 이들 가운...

 [2017/08/19 18:34]
산상수훈 6
무엇이 의로움일까요?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바닥에(힘들게;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아끼는 것이 아닐까요?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차마 버리지 못하는 마음, 그래서 그 양을 찾아 위험과 어둠을 마다하지 않고 산길로 접어드는 마음 말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이해관계’에 집중되는 세상에서 ‘의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대하기 불편한 별종처럼 여겨질 것입니...

 [2017/08/12 17:23]
산상수훈 5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판)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새번역개정판)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메시지성경) 일곱 번째 복은, 단순히 하...

 [2017/08/05 18:12]
산상수훈 4
자비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늘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자비로운 사람,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나라와 민족을 바라보며 슬피 우는 사람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 때문에 우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밥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 때문에 우는 사람입니다. 엉망이 되어버린 교육 현실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가속화되는 무한경쟁의 구조 속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고 우는 사람입니...

 [2017/07/29 20:22]
산상수훈 3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다른 이들을 위한 여백을 만들며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다른 이들의 설 땅이 되어주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으며 깨닫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제 사는 궁리만 하고, 남을 궁지로 몰아넣는 사람들은 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

 [2017/07/22 17:26]
1,,,21222324252627282930,,,45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234번길 30 (사리 900-60). admin@slowstep.org / Copyright (c) SlowSte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