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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공부⑩ <진실하게 하소서> 신명기 5:19~21, 골로새서 3:5~6
오늘은 십계명 공부 그 마지막 시간으로 8,9,10계명(신명기 5:19~21)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도둑질하는 삶, 거짓 증언하는 삶, 남의 재물을 탐내는 삶을 한마디로 말하면 ‘진실하지 못한 삶’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병들었다 하는데, 이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진실하지 못한지 부정부패와 한탕주의가 날마다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집단이기주의는 끊일 줄 모르고, 온통 속고 속이는 뉴스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북한 사람은 온통 미쳤고, 남한 사람은 온통 썩었다.”는 어느 탈북자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병들었다는 말은, 무엇보다 그 사회를 지탱시켜 주는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 정신을 만들어가는 종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정치지도자이든 종교지도자이든, 식자이든 무식자이든, 백성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위선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의 지도자들이 진실하게 살아가지 않으니, 백성이 진실하게 살 리가 없습니다. 모두들 도둑놈의 심보를 갖고 살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줄을 모릅니다. 똑똑하고 유식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갖고 있는 능력은 굉장한 것 같은데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온갖 탐욕과 거짓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사람들의 진실하지 못한 모습을 이렇게 고발하셨습니다.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고, 에바(되)를 작게 하고 세겔(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헐값에)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아모스 8:5~6)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죄악은 진실하지 못한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탐욕, 명예와 지위에 대한 탐욕, 사치와 향락에 대한 탐욕, 심지어는 사랑과 애정의 탐욕까지 죄악을 일으키는 동기가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탐욕으로 전쟁도 일어납니다. 이미 가진 것이 많은 나라들이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정말 있을 수 없는 죄악들을 저질러왔습니다. 이처럼 탐욕이라는 것은 개인이든 국가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강하고 악한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하지도 못하고 위선으로 가득 차있는 욕망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을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뜻으로 읽겠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새가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 욕심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그 욕심이 탐욕이 되어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유산분배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칠지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도다.”(누가 12:15) 가진 재산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지도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탐욕은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끊임없이 욕망의 주머니를 부풀려서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서 불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 어디서나 진리입니다. 이어 오늘의 신약성서 본문, 골로새서 3장 5절을 보면, 탐욕은 우상숭배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탐욕이라는 놈을 앉혀놓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교회도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척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을 세상 사람들은 ‘예수쟁이’라고 비하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교회에 이름만 등록해 놓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쟁이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서 바르게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예수님의 진짜 제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탐욕이 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자족하는 삶이라고 해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라는 뜻은 아닙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되 정당한 방법으로 진실함과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탐내는 욕심을 항상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계명이 가르치는 대로 이웃의 것을 탐내는 탐심은 분명히 경계해야 하지만, 선한 욕심마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선한 욕심이란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배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열심히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 이웃을 섬길 수 있을까?’ 이런 욕심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런 선한 욕심을 우리의 마음과 삶에 가득 채우면, 그릇된 탐욕이 우리의 삶 속에 자리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쟁이로만 살아간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부정부패 즉 뇌물을 주는 풍토라 합니다. 큰 공사를 따내려면 공사비의 20%를 뇌물로 바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공사를 계획해서 완공하기까지 뇌물을 바쳐야 하는 곳이 무려 20군데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20%의 예수쟁이들이 살고 있으니, 뇌물을 받은 20명 중 적어도 4명은 예수쟁이들이 받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빛과 소금으로 자처하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밝혀줄 노력은 하지 않고, 오히려 탐욕에 젖어서 도둑질과 거짓말을 해대고 있으니, 우리사회가 온통 썩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부르셨다면, 그것은 어떤 삶이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을, 온 마음을 다하고 온 목숨을 다하고 온 뜻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 사랑을 진실함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주님의 제자라면, 어떻게, 만들고 운영하고 점검하고 관리할 때 소홀히 할 수 있겠으며 무책임할 수 있겠습니까.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 사회 안에서 드러내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