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23-12-02 (토)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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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로마 10:14~21)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로마 10:14~21) - 로마서 묵상 3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10:10)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는 진정으로라는 단어가 붙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일과 입으로 시인하는 일에 머리카락만큼이라도 거짓이 섞여 있으면, 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10:13)고 했습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데는 인종도 혈통도 따로 없습니다. 학력도 없고 배경도 필요 없습니다. 바로 전까지 어떻게 살았는지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진정으로주의 이름을 부르면, ‘누구든지구원을 받습니다(누가23:39~43). 이 말에는, 진정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는, 그의 과거가 어떠하든, 출신과 배경이 어떠하든, 아무리 아브라함의 핏줄을 이어받은 이스라엘 중의 이스라엘이라 해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복음은 그것을 듣는 자에 따라서 복()이 아니라 화()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14~15 :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또 다른 결과를 낳고 그 사이로 인간의 역사가 흐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없는데 어찌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듣지 못한 일을 어찌 믿겠습니까?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듣겠습니까? 말하라고 보내지 않았는데 누가 말을 하겠습니까? -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불러(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입술로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 일은 결단코 우리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과 오랜 세월이 맺은 결실입니다. 그러하기에 한 인간의 구원은 온 인류가 함께 겪는 사건입니다. 개인 구원이니 사회 구원이니 하고 나누어서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게 구분해서 말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둘이 따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과 사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습니다.

 

16 : 새벽닭이 운다고 마을 사람 모두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뿌려진 씨앗 모두가 싹을 틔워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이 세상에 전해졌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이 그것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가 일하던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7 : 사막에서 목말라 죽어가던 두 사람에게 누가 말하기를 앞에 보이는 작은 언덕을 넘으면 오아시스가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마지막 힘을 다 쏟아 언덕을 넘어갑니다. 또 다른 사람은 같은 말을 들었지만, 헛소리라고 생각하여 그대로 누워있습니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요? 그들이 전해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언덕 너머에 정말 오아시스가 있다면) 한 사람은 살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죽을 것입니다. 전자에게는 믿음이 있고 후자에겐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복된 소식을 귀로 듣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귀로 듣는다고 해서 곧바로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귀로 듣고 몸으로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귀로 듣고 입으로 아멘 하고 거기에서 그치면, 언덕 너머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알아요. 나도 저 언덕 너머 오아시스가 있음을 믿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그대로 누워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결국 수없이 믿는다고 말하면서 죽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사랑과 마찬가지로,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동의가 아니라 순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한편,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실천입니다. 언덕을 넘어 샘에 이를 때까지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불확실한 약속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는 소식은, 어쩌면 공연한 헛소리가 떠돌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괜히 힘들여 언덕을 넘다가 거기서 맥없이 죽어가는 꼴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길이란, 어디로 갈는지 목적지조차 모른 채 단지 하나님의 한마디 약속에 몸을 맡기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여정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온 생애를 걸고 뛰어드는 도박과 같습니다. 그것은 산의 정상을 가리키는 팻말을 보고 그대로 오르는 산행입니다. 팻말이 과연 정상을 제대로 가리키고 있는지, 아니면 엉뚱한 방향을 잘못 가리키고 있는지, 지금은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쪽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두드려보고 건너가는 돌다리는 믿는 사람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자신의 생애를 걸고 안개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18~21 :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이 배척하고, 그 대신 이방인이 받아들임으로써 이스라엘이 그들을 시기하게 되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배척했지만,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문에는 빗장이 없어서, 스스로 배척당하는 자들은 있어도 그분이 배척하는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시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듣는 것으로 그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오늘도 온몸으로 살아내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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