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전교회라 부르는 이상한 구분 ”
“영어 단어 ‘비전’(vision)이란 말은 당연히 한글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성서의 특정한 개념을 우리 취향에 맞게 특화시킨, 한국교회가 매우 선호하는 특유의 어휘이다. 영어사전의 개년 정의에 의하면 이 단어는 첫째, ‘시력’, ‘시각’이란 뜻이 있고, 둘째는 앞날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나 미래지향적인 낙관적 ‘통찰력’ 등을 암시한다. 셋째는 둘째보다 협소한 의미로 꿈이나 몽상 가운데 보게 되는 ‘환영’이나 ‘환상’ 등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기독교인이 첫째 개념 범주로 이 ‘비전’이란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둘째와 셋째 범주에서 사용하는데, 신약성서의 용례가 주로 둘째 범주를 선회한다. 한국교회에서 이 비전이란 말을 매우 좋아하는 배경은 우리의 낙천적인 민족성과 연관되어 있거나, 반대로 우리 현실의 비관적인 모습을 감추거나 극복하려는 미래지향적 슬로건으로 이 개념이 주효한 탓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현실이 구차하고 고단할수록 ‘비전’이란 말은 더욱 상종가를 달리며 인구에 회자되고, 심지어 ‘비전’교회는 물론 ‘비전’대학으로 조직체의 이름을 개명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신약성서와 창의적 설교”, 차정식 지음, 동연 / 282쪽)
이런 이유로 (최근까지 중대형교회 위주로) 이른바 ‘비전’트립 단기선교가 유행처럼 번졌는데, 이는 해외선교사가 파송된 곳을 방문해 짧은 기간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고 오는 해외 탐방 프로그램이다. (나도 오래전에 인솔자로 미얀마에 다녀온 적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런 행사가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비전’트립이란 단어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감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회자되는 ‘비전’이란 단어가 있다. 바로 ‘미자립교회’를 대신하여 부르는 ‘비전교회’가 그것이다. 바꿔 부르게 된 이유는 이해된다. 교회를 재정 자립도를 기준으로 나누는 이른바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의도일 텐데, 이것도 다분히 편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미자립교회는 ‘비전’교회이고 자립교회는 비전교회가 아니란 말인가. 또 자립하지 못하는 교회를 ‘비전’교회라 부른다고 해서 그 교회가 수년 내에 자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비전을 품고 사역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과 연대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것도 역시 탁상행정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비전’교회는 모든 교회에 해당하는 것이지 작은 교회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비전vision은 특권화된 비전?傳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세상의 가장 은밀한 구석까지 전파하기 위한 영적인 동력이다.” - 위 같은 책 283쪽) 따라서 교회를 부를 때는 그 교회의 이름을 부르면 된다. 굳이 규모에 따라 교회를 구분해야 할 때는 ‘규모가 큰’ 혹은 ‘규모가 중간 정도의’ 그리고 우리 교회처럼 ‘규모가 작은 교회’라 부르면 된다. ‘비전’이라는 단어를 편의적으로 잘못 사용하지 않고 모든 교회가 ‘비전’교회가 되는 것!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숙제 가운데 하나다.
“우리 교회는 복음 전파와 상생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 천천히 걸어가지만 한 번도 뒤로 가지 않은, 시골의 작은 교회 ‘산청돈암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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