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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궤변을 낳고 (로마 3:1~8) - 로마서 묵상 10 1~2절 : 그러면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면, 이방인보다 나은 점이 유대인에게 없다는 말인가요? 또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면, 할례의 유익함이 없다는 말인가요? 이와 같은 가상(假想) 질문에 바울은 분명히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이방인과 비교해서 유리한 점이 있고, 할례에도 유익이 있습니다. 있어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것들 가운데서 우선 한 가지를 든다면,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다는 점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받아서 이스라엘에 전해준 ‘율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 가운데서 유대 민족을 뽑아 그들에게 당신의 말씀(법)을 주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대인에게는 이방인들이 지니지 못한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특권을 제대로 누리며 잘 수행했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그 특권을 제대로 누리며 잘 수행했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3~4절 : 유대인들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특권을 잘 수행하지 못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혈통에서 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미쁘심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이 등불을 아무리 밝혀도 그것으로 햇빛을 더 밝게 할 수는 없습니다. 참사랑은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도 그렇습니다. 믿으면 되는 겁니다. 그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말은 참으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사랑은 대상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에 한결같이 최선을 베풉니다. 차선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가장 좋은 것’이 아니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고 반드시 의로우십니다. 내 몸에 닥쳐오는 온갖 고약한 일들도 그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베푸시는 ‘가장 좋은 선물’이 들어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 믿으면 믿는 대로 됩니다. 누구든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받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눈으로 나에게 닥치는 것들을 취사선택하여 이것은 환영하고 저것은 거절하면서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니, 얼마나 한심한 모습입니까? 사람이 믿거나 말거나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속이거나 말거나 하나님은 참된 분이십니다. / 그러니 우리는 정말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5~6절 :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불의로 말미암아 드러납니까? 밤하늘의 별들이 어둠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듯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말하는 대로’ 하는 말입니다. 진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면 사람은 빛을 볼 수 있을까요? 날마다 빛 속에 살지만, 사람은 빛을 보지 못합니다. 총알 속도도 따라잡지 못하는 눈으로 어떻게 빛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살지만, 하나님의 의를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만두고 인간의 의에 대해서도, ‘이것이 그것이다’ 하고 확실히 정의를 내릴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는 말은 무식한 인간의 궤변일 뿐입니다. 7~8절 : 한 번 어긋난 화살은 멀리 갈수록 과녁에서 벗어납니다. 궤변이 궤변을 낳더니 마침내 “선을 위하여 악을 행하자.”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 모두가 인간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는 ‘착각의 결실’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은 옳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기 때문에, 그래서 은혜가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유익함을 얻었으나 유익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본 유대인의 현주소였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자로서 그것을 잘 지키고 전파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유대 사람이라고 더 나을 게 뭐가 있습니까? 할례받은 것의 이득이 무엇입니까? 어느 모로 보나 이득이 많습니다. 첫째로는 유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어떤 사람들이 신뢰를 저버렸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고 그들이 신뢰를 저버린 일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분이시지만,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해야 합니다.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는 대로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주님이 의로우시다 인정받으시고, 주님이 재판받으실 때 주님이 이기시도록.”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겁니까? 사람들 방식으로 말해보는 겁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시겠습니까? 누군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두드러져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왜 나도 여전히 죄인으로 판결을 받아야 합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악한 일을 하여 선한 일이 생기게 합시다.”하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헐뜯으며 주장하기를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 새한글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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