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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여 (로마 11:25~36) - 로마서 묵상 33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을, 바울은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돌 감람나무 가지에 견줍니다. 가지의 자리에서 보면 뿌리가 바뀐 것이요, 뿌리의 자리에서 보면 가지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외부의 힘이 그 법칙을 깨뜨리면서 이루어놓은 변혁입니다. 그리고 그 변혁의 주체는, 나무가 아니라 농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방인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바꾸어놓으셨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유대인 출신이든 이방인 출신이든, 자기의 자기 됨이 자기의 힘이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25~27절 :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긴다는 말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는 자만에 빠져 있음을 뜻합니다. 이방 출신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스스로 어딘가 괜찮은 구석이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자기네 노력이나 행운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완고함을 역이용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우둔하게) 된 것이라.” 구원받은 이방인의 수효가 채워질 때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일부가 복음에 대하여 완고한 자세를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쉽게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비밀에 속합니다. 이 신비를 모르는 자들이 우쭐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멸시하거나 스스로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만이라는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이방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점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스라엘 가운데 일부가 고집스럽게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거절한 것이 하나님께서 억지로 그렇게 만드신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비록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간(유대인)의 거역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역이용하여 이방인을 구원하는 방편으로 삼으셨고, 나아가 마침내 모든 이방인과 모든 이스라엘을 함께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28~29절 : 이것은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일부러 유대인을 복음의 원수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일부가 복음의 원수가 된 것을 이용하여 이방인을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배척하시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누구를 내쫓을 ‘바깥’이 없기 때문입니다. - 조상을 택한 것은 곧 후손을 택한 것입니다. 조상과 후손은 한 몸입니다. 하나님께는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후회’란 과거가 있어야 가능한 것, ‘과거’가 없는 하나님께 ‘후회’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처럼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으십니다. 30~32절 : 먼저 불쌍한 존재가 있어서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누굴 불쌍하게 여기기 위해서 그를 불쌍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거두어두셨다.”라는 말은, 그들의 불순종을 용납하셨다는 뜻으로 새겨야 할 것입니다. 33~36절 : 길고도 자세한 논설이 갑자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대한 찬미’로 마감됩니다. 이 찬미와 탄식 앞에서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지푸라기’처럼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무슨 말로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겠습니까? - 오직 찬미와 탄식이 있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