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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깰 때 (로마 13:11~14) - 로마서 묵상 38 ‘깨어남’(혹은 깨달음)이야말로 종교의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있을 것을 틈틈이 가르치셨고, 함께 보낸 마지막 날 밤에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막14:34)라고 이르셨습니다. 사람은 깨어있지 않으면 잠들어 있고 잠들어 있지 않으면 깨어있을 뿐,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상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비몽사몽(非夢似夢)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깨어있으면서 잠을 자거나 잠자면서 깨어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잠을 자면서도 우리는 먹고 마시고 일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데, 그런 것을 일컬어 ‘꿈’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꿈에서 하는 일은 모두가 헛일입니다. 음식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출세해도 신상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는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허망(虛妄)으로 끝날 것입니다. 전도서를 쓴 사람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헛된 것에 빠질 수 없고, 나아가 ‘잘못’(죄)을 저지를 수도 없습니다. 깨어있으면 무엇이 잘못인 줄 아는데, 어떻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잘못인지 안다고 하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자기 몸이지만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인간의 몸은 매우 오래된 버릇 덩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 그것(몸)은 버릇에 따라서 움직일 뿐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시간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의 삶을 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버릇’은 과거의 산물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얼굴도 없는 ‘과거’에 내어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서야 어찌 하루인들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공자께서도 “아침에 도(道)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깨어남’ 또는 ‘깨달음’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우리의 종교적 스승이 아닙니다. 아무리 엄청난 기적을 일으킨다고 해도, 그의 몸이 ‘깨달음’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면, 그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11절 : 천기(天氣)는 분별하면서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을 예수님은 “겉만 꾸미는 자들”(눅12:56)이라고 나무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살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대의 뜻(징조)을 읽는 일은 언제나 예언자들(하나님의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이 시대를 “자다가 깰 때”라고 합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금 잠을 자고 있다는 의식입니다.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깨어날 때’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잠든 사람이 스스로 잠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논리로는 불가능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얼마든지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은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꿈을 꾼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자다가 깰 때’라는 말에 담겨 있는 또 하나의 의식은, 우리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알고 있는 현실이 끝나고 새로운 현실이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입니다. 이제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이리로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현실로 돌아갈 텐데, 그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이 바울의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모두에게 ‘죽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다가갑니다. 하루를 살면 그만큼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는 날’은 우리 몸이 본연의 상태로 ‘깨어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날이 ‘구원의 날’이요, 따라서 죽음은 구원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에게 ‘죽는 날’, 다시 말해서 ‘깨어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운명’에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날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날일는지 아니면 심판으로 들어가는 날일는지, 속일 수도 없고 속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9을 읽는다) 12~14절 : 하루를 살면 그만큼 밤이 멀어지고 낮이 가까워집니다. 밝은 날에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어둠의 행실을 벗고 빛의 행실을 입어야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곧 군자요 그리스도인이니까요. 지금 우리는 자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다가 깰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날이 영원한 심판의 날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내 힘만 갖고는 안 되니, 성령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놀라운 힘이 솟아날 줄 믿습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요한5:29) -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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