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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믿음 (로마 8:31~39) - 로마서 묵상 26 31~32절 : 하나님은 절대(絶對) 한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누구도 그분께 맞설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 가장 힘센 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장 힘이 센 자는 자기보다 약한 자가 있어서 비로소 존재합니다. 2등이 없이는 1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존재를 위하여 누구도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십니다. - 모든 상대(相對)가 없어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임마누엘)는 말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적(敵)이 있는데, 그가 하나님의 위엄과 힘에 눌려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도무지 적이 없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를 괴롭힐 적이 없고, 그래서 아무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사실 그분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은 당신의 아들 모습을 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말은, 이미 다른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은사’(恩賜)입니다. 질병도, 고통도, 외로움도, 억울한 누명도, 마침내 죽음까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눈을 뜬 사람만이 은사를 은사로 받아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좋은 선물도 받는 쪽에서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면, 나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온갖 ‘나쁜 일’과 ‘불행’ 속에서 신음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은, 은사를 은사로 알아보는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단, 그런 줄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그러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 되기를!) 33~34절 :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습니다.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은 택하고 다른 아들은 버리는,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사사로움이 없습니다. 그분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하십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란 누구인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받아들인 자에게는 그분의 선택이 선택이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자에게는 선택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 자녀로 선택한 자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것은, 그들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사랑이신 당신을 스스로 부정(否定)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글에도 “선한 자를 나는 선하게 대한다. 선하지 못한 자도 나는 선하게 대한다. 그것이 덕(德)이다. 덕이란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 이제 모든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은 없습니다. 더욱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 누가 감히 우리를 고발하겠습니까? 우리를 고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35절 : 그리스도께 바치는 우리의 사랑을 끊을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주 적은 핍박이나 위협에도 그것은 끊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도 잡혀서 끌려갈까 봐 스승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누구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무엇도,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으려면 그분보다 크고 힘이 센 존재라야 하는데, 그리스도보다 크고 힘센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늑대가 토끼를 위협하여 겁을 줄 수는 있겠지만 호랑이는 위협할 수는 없듯이, 목숨을 위협하는 칼이 우리를 위협하여 그리스도한테서 돌아서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를 겁주어 우리한테서 돌아서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이미 세상을 이긴 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등지고 놓아버려도,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데, 우리는 이런 은혜의 신비 속에 살아갑니다.) 36~37절 : 이 말씀은 책상 앞에 앉아 머리로 지어낸 생각을 적은 것이 아닙니다. (고후 11:23~27을 다 같이 / 298쪽) 이런 사람이 그 경험으로 깨우친 바를 적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는 것은 쉬운 일이나, 그 아는 것을 나의 몸으로 살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대로 살아내야 참 그리스도인이다.) 38~39절 : 내가 그분을 잡았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지만, 그분이 나를 잡은 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이 ‘믿음’이, 바울과 그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의인(義人)을 살립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그러니, 기왕에 믿음을 가질 바에는 딱딱하고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믿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믿음을 갖자!) - 사도 바울의 로마서는 이 두 구절만으로도 이미 충만한 생명이니, 우리가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