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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이 율법을 완성한다 (로마 10:1~13) - 로마서 묵상 29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를 자청합니다. 구원은 본래 이스라엘로부터 이루어지기로 계획되었는데, 그들이 거절함으로써 이방인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하여 어떤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까? 1절 : 바울은 앞서 자기 동족을 위해서라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9:3).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는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면, 도대체 하나님의 종인 그가 달리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유대인들이 ‘믿음’이라는 문을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러니까 더욱, 바울로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2~3절 : 바울은 이렇게 말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경험을 통해 뼈아프게 깨달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5~6을 읽는다) 그러나 열심이 어떠한 열심이냐가 문제였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그가 스스로 자랑스레 여겼던 ‘하나님(의 율법)을 위한 열심’은 사실인즉 하나님의 뜻을 배신하는 열심이었습니다. 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불은 그 좋은 만큼보다 훨씬 나쁩니다. 이스라엘이 열심히 하나님을 수호하려 한 것은 인정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눈먼(무식한) 열심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위한다면서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믿음을 믿는 것(신념)은 전혀 다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무리 상대가 나쁜 짓을 한다 해도, 그를 잡아서 죽이기 위해 멀리 다메섹까지 원정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4절 :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는 말은 율법을 완성함으로써 더 이상 율법이 사람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성숙한 병아리에게는 알껍데기가 필요 없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했지만, 그런 목적 아래 그들이 처형한 예수가 바로 그 율법을 완성한 분이었으니, 율법의 이름으로 율법을 처형시킨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5절 : 모세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것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얻는다.”(공동번역)고 기록한 것은 사실입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레18:5) 그러나 문제는 과연 누가 율법을 지킬 수 있느냐입니다. 아무도 법조문을 다 지킴으로써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한계입니다. 안식일 규정을 빠짐없이 지키는 것으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오직 사랑만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6~10절 : 바울은 모세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 얻는 길을 말하면서 동시에 믿음으로 구원 얻는 길도 말했다고 봅니다. 여기 인용된 본문은 신명기30:11~14에 있습니다. 바울이 인용한 본문의 명령과 말씀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율법의 모든 규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으니, 그를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그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 둘 사실 하나, 바울이 이 글을 쓰고 읽을 무렵에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그의 부활을 믿음으로 믿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1~13절 : 문자 그대로, “누구든지”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는 길에는 인종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속에 믿음이 없이 건성으로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7:21)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그 행위로써 구원을 얻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 그 믿음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귀한 율법을, 가치 있는 믿음을, ‘사랑’으로 완성 시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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