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9-08-31 (토)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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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계명 공부 7 ”

십계명 공부⑦ <간음하지 말라> 레위기 18:1~4, 신명기 5:18

바야흐로 지금은 성(性)의 전성시대입니다. 수많은 유혹과 성적 담론은 이제 금지의 울타리를 일시에 무너뜨리고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텔레비전과 영화, 신문, 광고, 음악들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은근한 추파를 보냈고, 드디어 사람들은 그것들과 야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사생아가 바로 불륜, 외설, 폭력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 사생아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 시선 속에는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미세한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그 시선을 관음적(觀淫的) 시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듯 욕망과 욕망의 신화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욕망이라는 것이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전도서 1장 7절을 보면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습니다. 욕망의 바다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욕망합니다. 하나님을 욕망하고, 사람을 욕망하고, 세상을 욕망합니다. 물론 욕망이 없다면 삶도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도, 이웃사랑의 실천도 다 욕망입니다. 그러기에 욕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도함입니다. 지나침입니다. 과도한 욕망은 범람하는 하천과 같아서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합니다. 그것이 선한 욕망, 거룩한 욕망이라 해도 과도하면 자기와 남을 해치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욕망은 다른 사람을 물질(物質)로만 보이게 합니다. 돈으로만 보이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내 욕망의 충족 수단으로 삼거나, 욕망 충족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제거하려는 것이 욕망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때로는 다독거리고 때로는 거슬러서 잘 길들이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옛말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잘 길들이는 사람, 족함을 아는 사람, 그침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육체적인 욕망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이면서 동시에 이 질서를 파괴하는 두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육체적인 쾌락에 대한 탐욕은 스스로 절제하거나 억제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런 유혹에 빠져 있을 때 악마는 하나님을 증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게 함으로써 우리를 타락시킵니다. 그래서 D. 본회퍼 목사님은 ‘도망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처음부터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차선은 도망치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힘으로 욕망에 대항하는 싸움은 이미 질 수밖에 없다고 본회퍼 목사님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더 더욱 평범하고 연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욕망의 절제보다는 그 유혹을 과감히 피해가는 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외쳐봅니다. 하지만 욕망 공장의 돌아가는 소음 때문에 거의 들리지도 않는 외침입니다. 그러면 욕망의 연기를 날려버릴 무슨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본회퍼 목사님도 말했듯이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한 꿈입니다. 왜죠? 악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엘리위젤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언자 한 사람이 소돔에 갔습니다. 그는 성문 앞에 서서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음란함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날마다 외쳤습니다. 그 모습이 딱해 보였던지 순진한 꼬마가 다가와, 아무도 듣지 않는데 왜 헛수고를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다 예언자가 말하기를 “그들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계속해서 외친다.”고 말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본래 이 계명은 이스라엘을 위태롭게 하는 혼외(婚外) 성관계를 금지한 것이라 합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이방종교가 혼외 성관계를 제사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있던 터라, 이는 이방신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는 계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3천2백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그 계명이 오늘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결혼의 신성함이, 생명의 창조와 직결된 성의 신비가 육체적인 쾌락으로 바뀌어버린 오늘의 세계에서 이 말은 어떤 뜻으로 읽히겠습니까? 현대인을 괴롭히는 낡은 법?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쇠사슬? 많은 사람들이 이 계명을 벗어버려야 할 낡은 옷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5:28)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르러서는 그저 입을 다물 뿐입니다. 정신적 순결까지 요구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 무겁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서 간음죄를 범하지 않은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어쩌자고 이런 말씀을 하셔서 우리를 괴롭히시는 겁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혹은 위선자로 만드시고자 함입니까? 이성(異性)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닙니까? 그것조차 죄라고 한다면 세상은 모두 감옥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금하신 간음은 무엇입니까? 더러운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성을 욕망충족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모든 시선을 일컫는 말입니까? 목욕물을 빼낸 욕조에 남는 거품처럼 허탈함과 자기혐오와 증오를 남기는 만남(또는 경험), 그것이 곧 간음입니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술어(述語)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이와 만나는 방식이 내 삶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이를 욕망충족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 야수가 되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활화산 위에 우리의 삶을 맡기면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를 죄인과 위선자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미혹의 문을 닫고 색정의 문을 닫아야 사랑의 실체가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라야 참 사람입니다. 문을 닫는 것, 이것을 예수님은 우리의 지체가 범죄 하거든 찍어버리라는 말로 표현하셨습니다.(마태5:29~30) 추상같은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죽이는 칼이 아니라 집착을 도려내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칼입니다.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몇 해 전에, 조선 후기의 최대 거상인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상도’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스님, 손 안에 있는 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칼, 어떤 칼을 쓸지는 자신한테 달려 있는 것) 지체를 잘라내는 단호함이 없이는 우리 속에 있는 비뚤어진 욕망을 제거할 수 없고, 한 번 크게 죽지 않고서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없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욕망에 수술 칼을 들이대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 모두가 함께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렇게 바꾸어 읽습니다. “사랑하라. 사랑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노래하라. 그러나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아버리는 치정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말라. 그릇된 시선을 거두라. 찬 서리와 같은 단호함으로 자신의 허망한 욕망을 베어버리라. 그게 어려우면 눈길도 주지 말고 도망치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이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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