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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악을 오히려 선으로 갚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또 건강한 교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람들 사이에는 사랑과 평화가 충만해질 것이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려주일’을 맞아,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뜻하셨던 바가 무엇인지 잘 깨닫고 늘 마음에 새기며 살기를 바랍니다. (중략)
이 이야기를 가지고 초대교회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본문에 앞서 나오는 이야기를 살펴보십시오. 마태복음에 ‘달란트 비유’로 소개된 이야기를, 내용을 약간 바꿔서 ‘열 므나의 비유’로 소개합니다. 달란트 비유든 열 므나 비유든, 비유가 뜻하는 바는 비슷하지만 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에 비해 그 결말이 굉장히 과격합니다. 누가복음 19장 26~27절을 찾아보겠습니다. 무섭다 못해 아주 폭군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이어서 나오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왕은 왕이되 어린 나귀를 타심으로 사람들에게 매우 친근한 왕으로, 메시야는 메시야이되 벌을 내리기 위해 오는 메시야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분으로 그려집니다(38절). 그러니까 초대교회의 해석은, 우리가 믿는 이 예수님은 앞서 소개한 무자비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왕이 아니라,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용서하시는 왕(메시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을,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크게 착각했던 것이니,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보고 바로 믿읍시다.’는 메시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겠습니까? 우리도 역시 착각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미국 감리교회 감독, 윌리엄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자신을 예수님에 비추어 판단하고, 예수님을 좀 더 분명히 보고, 예수님을 좀 더 가까이에서 따르고, 날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오셔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누구든지 긍휼히 여기라고 당부하십니다. 오직 사랑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속삭이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진정으로 받들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 곁에 어린 나귀를 타고 다가오신 예수님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달려 나가서 맞이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내고 그 뜻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습니까?
2천 년 전, 예루살렘에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왕은 왕이시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왕은 아니었습니다. 나를 살리려고 너를 죽이고, 내 나라를 세우려고 남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그런 왕이 아니라, 오히려 너를 살리려고 나를 죽이고,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려고 아들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그런 왕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번뜩이는 창검 대신에 겉옷을 벗어 휘두르게 하셨고, 위풍당당한 군마 대신에 아무도 타본 적이 없는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아직은 당신의 참 모습을 알아본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착각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한 것은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돌로 쌓은 성은 때가 되면 다 무너지게 됩니다. 그것이 성의 운명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은 도성의 운명과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지금 죽어도 죽지 않는 영생의 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지금 그 길을 일러주러 오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오히려 그분을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로 인해 벌어진 처참한 결과 때문에 예수님은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2019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우리에게 오시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그분을 맞이하시겠습니까? 흥분된 감정으로 착각 속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쓰러뜨리기 위해 못된 생각을 품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살려내는, 우리 모두에게 정말로 중요한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들어질지 몰라도, 누군가를 살려낸다는 것은 참으로 살아갈 만한 가치 있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누가복음 19장 28~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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