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십계명 - 자유로 인도하는 이정표
십계명은 우리의 삶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정표가 된다. 또한 십계명은 그 길로 출발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 선물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십계명은 삶을 인도하는 이정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의 명령을 정확히 지켜야한다는 위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교육방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십계명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만을 돌아보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십계명은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했다. 때로는 십계명이 위협적으로 다가와 사람들을 긴장시키게도 했지만, 그럴 때에도 십계명은 올바른 길로 가게 하는 힘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시나이 산에서 친히 십계명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하면 복된 삶을 누리고 범사에 형통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알려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데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십계명은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열 가지 자유의 말씀’이다. 그런데 십계명은 단순히 이성적인 사고에서 나온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대한 깊은 체험을 통해서 그 진정한 의미와 만나게 되는 응답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는 이 계명을 자녀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권면하신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신명기6:6~9).” 유대 전통에서 계명의 이러한 적극적인 의미와는 달리, 예수님 시대에는 계명이 너무나 크고 복잡해졌다. 십계명 대신에 248개의 ‘하라’는 계명과 365개의 ‘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었다. 모두 613개 조항의 계명과 금지는 개개인의 삶을 규제하였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계명은 무거운 짐과 족쇄가 되어버렸다. 그로 인해 계명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단순히 중요한 글자가 되고 말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예수님은 계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사랑의 계명’으로 환원하고 압축했다. 삶 속에서 계명을 지키고 실천해나가게 해주는 힘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이다. 그러므로 이제 시작하는 ‘십계명 공부’는 그것의 근원적 의미로 되돌아가서 시작하고, 그리고 오늘 나의 구체적인 삶에서 마주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아울러 십계명을 내가 나 자신과 나의 내적 상태를 반성하며 보는 거울로서 이해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십계명의 의미는, 복된 삶을 위한 초대에 내가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것, 곧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주신 말씀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맹세이자 서약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람에게 짐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영혼을 소생케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람이 세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사람의 눈을 밝게 해주고자 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복된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물한 자유를 지켜준다. 또 그것은 내적 평온과 기쁨의 원천이자 지혜와 통찰의 원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