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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정말 운이 좋은 이들이 있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빌라도입니다. 우리 모두가 장차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데, 빌라도는 세상에서 오히려 예수님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께 질문합니다. 첫 번째 질문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였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두 명의 왕이 있었지요. 헤롯 안티파스와 헤롯 빌립. 모두 로마 황제에 의해 유대의 일부를 다스리도록 허락 받은 분봉왕들 입니다. 빌라도가 말하는 ‘유대인의 왕’은 이들과는 다른, 즉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 낼 다윗의 후손 ‘메시야’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서두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유대인의 왕’,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은데, 중요합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요한복음 18장 뒷부분에서, 빌라도가 유월절 전례를 따라 사형수 한 사람을 놓아줍니다. 그 때 백성이 선택한 자가 ‘바라바’였습니다. 그는 단순 강도가 아닌, 로마제국에 항거한 폭력투쟁운동 지도자였습니다. 또 다른 사본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예수’입니다. 그날 백성들이 선택한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가 아닌 ‘바라바 예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대인의 왕’, ‘메시아 예수’를 선택해야 하는데, 때로는 엉뚱하게 다른 예수를 선택할 때가 있지 않은가요?.. 빌라도의 두 번째 질문은 “내가 유대인이냐?”였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므로 ‘유대인의 왕’이 메시아인지 아닌지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그런 말을 듣지요. “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단군의 자손이면서 자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소리를 하는가? 우리나라 왕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엉뚱하게 이스라엘의 왕들을 주워섬기는가?”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언약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럼, 유대인이 아닌 우리가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을까요? 실은 유대인이라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지요. 그리고 오늘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구원의 약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서 성경의 구원 이야기가 바로 나의 구원 이야기가 될 때, 우리가 비로소 구원의 감격을 누립니다. “내가 유대인이냐?” 로마인 빌라도가 유대인이 아니듯, 우리도 당연히 유대인이 아닙니다. 굳이 유대인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말한 것처럼(롬 2:28-29),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들이 진짜 유대인, 새 이스라엘, 다시 말해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세 번째 질문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기적을 베푸시고,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거룩한 일이었지요. 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 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란가요? 예수님은 그 나라가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중략)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라고,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 나라는 권력과 무력과 재물이 아닌 오직 진리에 의존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진리를 위해 태어나셨고, 그 진리를 전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진리의 음성을 듣고, 그 진리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빌라도가 놀라서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비웃음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짧은 순간이나마 진리에 대한 그의 갈망인지도 모릅니다. 그날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만 던지고 예수에게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아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합니다. 나름 예수를 변호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진리를 지키지 못하고 진리를 저버린 행위였습니다. 빌라도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대하고서도, 그 진리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는 메아리 없는 질문만 던질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진리를 붙잡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진리에 대한 진지한 갈망이 없었습니다.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요한복음 18장 33~38a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