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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레미야서 33장의 배경은 32장과 같습니다. 바로, 유다가 멸망하기 1년 전인 주전 588년인데, 이미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유다의 멸망과 왕이 바벨론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예언했다가(32:2-5) 미움을 사서, 왕의 시위대의 뜰에 있는 감옥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그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유다가 멸망했기에, 유다 역사상 가장 절망적인 때가 바로 그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아가 예언한 “다윗에게서 나올 한 공의로운 가지”는 과연 누구일까요? 시드기야처럼 백성을 상대로 하나님의 공의를 조작하는 자는 아닐 것입니다. 또 그로 인해 자신도 망하고 그에게 속한 자들까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자도 아닐 겁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불행한 역사 가운데 나라가 큰 위기에 처할 때면 언제나 메시아의 출현을 고대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엔, 포로 귀한을 이끌었던 ‘스룹바벨’이 메시아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으니까요. 또 시대가 바뀌어 그리스의 압제 가운데 신음할 때는, 유다의 독립을 이끈 ‘유다 마카베오’를 그들이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나타난 것은 단지 ‘하스모니안 왕조’라고 하는 타락한 왕조에 불과했습니다. 로마가 유다를 지배할 때는, 사람들은 혹시 헤롯, 아니면 세례자 요한 또는 대로마항쟁을 벌였던 많은 인물들을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예레미야가 말한 다윗의 후손, 곧 메시아로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께서, 일찍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그 언약을 이루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왔다는 점과 그분 스스로 불의하고 낡은 성전을 대체할 영원한 새 성전이 되셨다는 점이 중요했지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새 이스라엘)으로 삼으셨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성서는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이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시는 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 땅에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의 부활을 통해, 이미 드러난 하나님의 정의와 그분의 공의를 널리 선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삶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되, 십자가와 부활의 방식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무래도 혼자서는 쉽지 않고, 우리 모두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데 그 과제가 이번 수능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의와 공의,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 두 낱말은, 사람들 사이의 올바르고 정당한 관계, 법정에서의 공평함, 강한 자들에게로부터 약한 자들을 보호함(justice)과 더불어 그런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개인의 품성(righteousness)을 의미합니다. 유다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안전은 종교적인 경험이나 의식의 영역이기에 앞서, 특수한 정치적 상황의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가 외국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예루살렘은 침공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었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공의로운 가지의 기능은, 우리가 말하는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분야에 속합니다. 구약성서 일과가 강림절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우리 앞에 있는 문제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 세상과 시간을 넘어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과 역사 속에서도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존재인 공의로운 가지는, 인간 세계에 인간의 몸으로 임합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 사람들의 희망만이 아니라, 강림절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 사이의 올바르고 정당한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법정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공평함을 위해 싸워야 하며, 강한 자들에게서 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힘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이 땅에서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지 않을 텐데,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 간절하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강림절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시여, 우리에게 진정한 메시야로 오시어서 모든 속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주소서. 주님의 교회가 그 일을 받들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절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_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예레미야 33장 14~16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