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탄절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인사는 무얼까요?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기쁜 성탄절입니다!”겠지요. 오늘만큼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즐겁고 기쁜가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유가 뭘까요? 좁은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이고, 넓은 의미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온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개입과 손길이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좁은 의미로서의 개인 구원이든 넓은 의미로서의 온 세상의 구원이든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에 근거하여 시작되고 또한 마무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은총을 입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만 구원받기 이전, 즉 은총을 경험하기 이전에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우리의 처지가 어떠한지도 모르며,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인간의 부족함과 어리석음과 미련함과 연약함을 뛰어넘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비참한 현실 속에 있으나 깨우치지 못해 죄악으로 물들어 있을 때’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부탁이나 기도의 응답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시작이요, 그 시작은 바로 사랑을 근거로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오신 사건과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원인도 자격도 조건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되고, 그 모든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 ‘성탄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의 기쁨’은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 하루만의 기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신앙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믿음의 부족함으로 인한 실패와, 소원은 있지만 그걸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좌절할 때마다 기억해야 할) 일상의 기쁨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잘했을 때 오신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을 때, 즉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한 해를 되돌아봤을 때, 자신의 신앙생활에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보기에도 늘 만족스럽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거룩한 것을 바라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며,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거룩한 소원만 있을 뿐 그 소원을 다 이루지 못하고 삽니다. 물론 자기의 소원만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가끔 한 번이지 지속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기쁘고 만족하는 순간보다 절망하고 낙심하는 때가 더 많으니까요. 교우 여러분, 그럴 때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오셨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부탁으로 오신 게 아닙니다. 우리의 각오와 결심에 응답하여 오신 것도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그 능력을 보고 오신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서도 아니고, 예배 때마다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한 것으로 오신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행실과 노력과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이 땅에 오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했을 때 오신 게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괜찮을 때 오신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 심지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 있을 때 친히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불러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격과 조건에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일깨우는 때가 바로 ‘성탄절’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책임질 만큼 준비되어 있거나 답을 찾아낼 만큼 지혜롭지 못합니다.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우리를, 이렇게 보잘것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셔서 이 땅에 친히 오셨고,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를 구원하셨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불신앙에도 한 번도 당신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8:31~32)
아들을 내준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의미합니다. 부모 된 자들은 “아들을 죽이느니 차라리 나를 죽여라.”고 말하는 심정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누군가의 잘한 행동에 대하여 준 것이라면 혹 마음의 위로라도 얻을 수 있겠지만, 그와 반대인 사람을 위해 자식을 내어준 것이라면 그 의미는 달라집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스스로 버리고 도망갔을 때에, 우리의 구원과 기쁨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가 비록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찾아오시는 의로우시고 사랑이 넘치는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은 바로 이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절기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자리까지 오시기 위하여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통치와 권세 잡은 이들의 온갖 횡포로 억압받는 백성과 함께 고난의 인생을 사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약속과 신실하심의 표현이 바로 예수님의 오심이요, 성탄절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탄절은 ‘기쁨의 절기’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오신 것도 기쁘지만 그것보다 더 기쁜 것은,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나와 우리 모두를 영생의 길로 이끄시기 위하여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써, 끊임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되찾아내는 복된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성탄절이 그런 놀라운 일을 다시 시작하는 첫 발자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 - 성탄절 설교 중에서 (마태복음 1장 20~2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