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말씀인 동방박사 이야기는, 예수님이 모든 나라와 민족과 사람을 향한 구원의 빛이심을 보여줍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유대인들보다 먼저 찾아가 경배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단지 이스라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장소와 사람들에게, 심지어 이스라엘보다 이스라엘 밖에서 활짝 열리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기독교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지요. 그런데 동방박사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구약의 말씀 이사야서 60장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사야서 60장 1~7절을 요약한 것이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메시야의 별이 빛을 발하자, 동방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새로 탄생할 이스라엘의 메시아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또 그들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올 때에, 소중한 예물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흔히 점성가로 알려져 있지만 현자 또는 왕들로도 소개됩니다. 그렇게 볼 때, 동방박사들은 장차 온 세상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에게 나아올, 세상 모든 나라의 수많은 왕들과 그의 백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의 기독교 역사가 실제로 그렇게 흘러갔으니까요..
동방박사의 이야기는 단순히 교훈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재미있는 소설도 아닙니다. 특히 천체물리학과 관련된 보고서는 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우리는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감추어졌던 구원의 비밀이 마침내 드러나는 이야기로, 유대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예언의 성취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구원사건으로, 그 하나님의 놀라운 주현절 현현이야기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동방박사는 단지 전설 속의 인물들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의 대표자가 됩니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동방박사의 이름은 후대에 붙여졌는데, 황금을 바친 인물은 유럽계 노인 멜키오르, 유향을 바친 인물은 아시아계 청년 카스파르, 몰약을 바친 인물은 아프리카계 중년 발타자르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읽는 우리가 단순히 제3자가 아니라, 그렇게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사건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우리가, 우리의 대표인 동방박사들과 함께,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께 나아가 경배하고 소중한 예물을 드리는 진정한 새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동방박사 이야기가 우리에게 보여준 이 놀라운 사건의 의미는 단순합니다.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온 세상의 참된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앞에서 오히려 막강한 세상 권력을 가진 자들이 두려워 벌벌 떨고 소란을 피웁니다. 그 앞에서는 온 세상의 현자들도 무릎을 꿇고 경배합니다. 그 앞에서는 세상의 온갖 차별도 힘을 잃어버리고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 앞에서는 세상의 실질적인 왕 노릇을 하는 권력과 자본도 빛을 잃습니다. 이 놀라운 비밀의 계시, 하나님의 현현의 의미를 세상 가운데 살아내고, 또 세상 속에 전파할 책임이 바로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보다, 예배를 마친 후에 더 어려운 결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올 때 왔던 길보다, 예배를 마친 후에 더 험한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라고 지시하시는 길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온 길보다 더 험한 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우리 모두를 살리는 구원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경험과 욕심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시는 대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야합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익숙한 길, 성공을 향한 교만의 길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약한 자들을 대변하는 겸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나, 성서를 공부하는 일에 있어서나, 경건생활을 충실히 해나가는 일에 있어서나, 교회를 섬기며 바로 세우는 일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 나가는데 있어서,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마태복음 2장 1~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