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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절 이하를 보면, 마가복음 기자는 이사야서를 인용해서 ‘헛된 예배’에 대해 일침을 놓습니다. 헛된 예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사야가 활동했던 당시의 예배가 너무 허술했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들이 기도를 적게 했다거나 번제물이 형편없었다는 말도 아닙니다. 당시의 제사도 다른 때나 마찬가지로 최상의 제사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한정해서 본다면, 사람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것이 곧 ‘헛된 예배’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지키지 않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면서 그게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날 우리라고 다를까요?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사람의 흥미를 끄는데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만족시키려는 의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을 늘 경계하면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바른가?’ 반드시 되짚어보아야 합니다. 그럼 헛된 예배란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인가요? ‘내가 이 정도로 믿음이 있다는 생각에 만족하는 것, 믿음이라는 심리적(감정적) 현상에 매달리는 것, 또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종교적인 열정.’ 이게 모두 헛된 예배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주님께서 우리를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될 겁니다. 그래요, 우리가 무언가를 단번에 배울 수 없듯이 우리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신앙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느껴야 참된 예배가 가능한 것입니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많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것을 주님께서 채워주시니까요. 그러므로 날마다 그 채워주심의 은혜를 받으면서 참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예배’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간단히 말하면 헛된 예배와 반대되는 것을 찾으면 됩니다. 헛된 예배는,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예배는, 사람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 자체가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살아있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예배는 곧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렇습니다. 날마다 먹는 음식이, 내가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먹는 사람은, 이런 일상에서도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더 궁극적으로, 지금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구약 아가서는, 남녀 간의 사랑의 표현을 통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완전한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아고보서에서는, 기독교 신앙이란, 종교적인 행위와 고백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잘 실천해야 하는가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오늘의 본문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은 손을 씻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이 무시되는 상황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신앙생활의 걸림돌입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마가복음 7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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