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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원폭 계획을 추진한 핵 과학자들이 인류에게 핵 위협을 경고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고안한 시계입니다. 이 시계가 자정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지구의 파멸도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이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2017년보다 30초 앞당겨져 자정 2분 전인 23시 58분에 맞춰졌다고 합니다. 30초가 앞당겨진 이유는 미국과 북한의 갈등으로 인한 행동들이 오판이나 사고에 의해 핵전쟁 가능성을 키우고 있고, 기후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암울한 경고를 마주하니 유대 역사학자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황새 한 마리가 수렁에 빠졌는데, 다리를 빼낼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긴 부리가 있지 않나?’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나? 다리는 수렁에서 빠져 나왔지만 이번에는 부리가 박혀 있는데. 그러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다리를 수렁에 넣고 부리를 뽑아냈다. 그러나 그 무슨 소용이랴? 다리가 수렁에 빠져 꼼짝을 않는데. 인간의 상황이 이와 똑같다. - [누가 사람이냐]에서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지금은 울 때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부끄럽다.” 그래요, 지금은 울 때입니다. 지난여름, 우리는 수십 년만의 폭염과 열대야를 경험했습니다. 갈수록 강도와 세기를 더해가는 폭우도 빈번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운이 좋았지만 이웃나라 일본은 태풍이 수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전에 없던 일들을 경험하면서 다들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야.’ 멀쩡한 산과 들, 강과 바다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이, 후손이 누리고 영위해야 할 자원에 빨대를 꽂고 당대에 다 뽑아먹으려고 하는 인간의 허망한 욕심이, 하나님의 몸인 이 세계를 끊임없이 헐벗게 하고 있는 지금은, 그야말로 ‘울 때’입니다. 생명보다는 파괴를 택하면서도 그것을 개발과 개선이라는 미명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지금은 정녕 ‘울 때’입니다. 인간이 “보다 크게, 보다 빠르게, 보다 부유하게, 보다 편하게”를 외치며 강도로 돌변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강탈하고 있는 지금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상황이 이러하기에 농부들이 더욱 고맙습니다. 대도시에서만 살다가 농촌 지역에 내려와 6년을 좀 넘게 사는 동안 농부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농부들이야말로 성자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농부가 성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환경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는 듯 주저앉아 절망하기보다는, 기어이 생명의 원천을 향해 손을 뻗고, 울면서라도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 대지(大地)에 깃들여 성실히 땅의 성품을 익히다가 어엿한 풍경이 되고 마는 농부들이야말로 환경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성자(聖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힐데가르트는 하나님의 몸인 대지를 거스르고 황폐화시키는 행위를 가리켜 ‘가장 궁극적인 죄’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지는 어머니입니다. 대지는 자연적인 모든 것의 어머니, 인간적인 모든 것의 어머니, 만물의 어머니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대지에 상처를 입히고 구멍을 내는 행위는 ‘모친살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 행위에 맞서서 대지에 난 상처를 꿰매고 구멍을 매우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임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는 생명을 경시하는 배금주의와 무자비한 자본주의가 완강히 버티고 서서 생명파괴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농촌과 농부들에게까지.. 이런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고, 만물이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거대한 흐름에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맞서며 ‘오직 생명을 택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에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대답하면서 거룩한 땀 흘림으로 성자와도 같은 진정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바른 농촌선교, 바른 신앙생활 모두 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라도 부단히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하나님, 다시 하소서. 가뭄에 시달리는 저희 인생에 단비를 내리소서. 그리하시면 절망 속에서 곡식을 심은 이들이 수확기에 만세를 부르리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떠난 이들이 한 아름 행복을 안고 웃으며 귀가하리이다.” - 메시지 성경 (시편 126:4~6)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시편 126: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