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8-11-03 (토)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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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

2주 동안 서울아산병원을 오가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몰아서 하느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곳은 면소재지이긴 하지만 산이 높은 동네여서, 안 그래도 나날이 몽당연필처럼 짧아지는 하루가 더욱 짧게 느껴집니다. 어느덧 만추의 계절, 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처진 감나무들은 벌써부터 사람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이제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감 수확에 들어갈 텐데, 일 년 중 가장 바쁜 두 달을 보내게 됩니다. 한겨울 해가 바뀌면 나오게 될 곶감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그 동안의 목회 살이를 추억하며 성지순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회 살이 20년을 넘긴 목사가 그 흔한(?) 성지순례 한 번을 가보지 못했다면 믿어지시나요? 성지순례는커녕 제주도도 몇 번 가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부러 가지 않은 건 아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영~ 성지순례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지순례를 꼭 갔다 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지순례도 한 번 가보지 못한 목사이다 보니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을까봐 마음 한 구석에 늘 짐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제게 성지순례를 한 번 다녀온 친구가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한 말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목사, 요즘 흔히(?) 가는 성지순례는 순례가 아니야. 그냥 돈 많이 들여서 갔다 오는 관광이야, 관광! 그리고 우리 주님은 예루살렘에 안 계시고, 사도 바울도 소아시아에 안 계셔! 주님도 사도도 없는 성지에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놀러 갔다 오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그럼 우리 주님은 어디 계실까?" 물었지요. "우리 주님은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 한복판에 계시지! 그래서 진정한 성지순례는 바로 우리의 삶의 자리야!" - "그럼 우리 자리가 바로 꽃자리일세!" 이렇게 답하는 내게 "그럼, 그럼! 꽃자리고 말고!" 맞장구쳐주는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지난 한 달 동안 어렴풋이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2주 동안 병원을 오가며 있었던 일들과 친구와의 대화는, 지금까지 문제를 겉에서(밖에서)만 보려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략)

교우 여러분, 신앙의 언어와(표현)와 과학의 언어는 그 구조가 다릅니다. 그래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의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 과학과 신학 간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을 선물로 보느냐 아니냐 하는 데 있다. 이는 세상을 엄밀하게 조사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강주헌 옮김, 모멘토, 55쪽)

‘테리 이글턴’은, 믿음은 본래 무엇 혹은 누군가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헌신충성을 뜻한다면서, “기독교 신앙에서 일차적인 것은 초월자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명제에 동의하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둠과 고통과 혼란 속에 허덕이며 막다른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랑에 대한 약속을 충실하게 믿고 지키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헌신(위의 책, 55쪽)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전대미문의 큰 세계를 경험한 욥은 이제 하나님을 소문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말합니다. 이때의 회개는 구체적인 잘못에 대한 돌이킴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유한함과 무지함에 대한 인정일 겁니다. 누가복음은 갈릴리호수에서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서 많은 물고기를 잡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놀라운 일을 겪은 후 베드로가 한 행동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린 채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5:8)

절대 거룩함의 현존 앞에 설 때, 인간은 이렇게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욥의 경험도 이와 같았을 겁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뇌의 심연을 거쳐, 온 우주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장엄한 세계에 눈을 뜬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인식에 이르기까지 욥은 매우 가혹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삶 속에서 몸으로 느끼고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한 우리도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욥과 같이 끝까지 견디면서 깨달음을 얻어, 진정으로 하나님을 뵙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욥기 42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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