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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생활은 대충대충 해도 가능하지만, 믿음생활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기자는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6:65)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와중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알았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예수님 주변의 많은 이들 중에서 제자들만이라도 이렇게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게 말입니다.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알고 믿었습니다.’가 아니라, ‘믿고 알았습니다.’고 한 베드로의 말이 참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누구는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누구는 못 믿을까요?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린아이라도 잘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분면하고 간단한데, 사람들이 그걸 어렵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좀 배웠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니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다려온 메시아는 모든 문제를 풀어줄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그 문제를 풀어야 할 사람은 그대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고,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리키는 좁은 문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는 이들은 결국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떠나는 그들을 붙잡을 생각은 없었겠지만 예수님은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질문을 받은 베드로는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님에게 있으며, 주님이야말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데, 가기는 어디를 가느냐고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영생의 말씀이 주님에게 있다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신앙의 능력과 그 위기를 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스캔들입니다. 걸림돌입니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걸려 넘어졌고, 또 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우리의 전부를 건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 진리가 가리키는 신비 곧 생명의 신비가, 언제나 우리의 영혼을 뜨겁게 감싸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너희도 가려느냐?”하고 똑같이 물으실 때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말이라도 힘주어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요한복음 6장 56~69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