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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주제는 “마음을 열어 ‘무지’(無知)를 깨우쳐 주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첫 번째로 읽은 사도행전은 유대인들의 ‘무지’(無知)를 깨우쳐 주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오후 3시 기도시간에 맞추어 두 사도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치유(회복)해 줍니다(행3:1~8).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놀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요. 이때 베드로는 복음을 선포합니다. 겁쟁이였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령의 힘을 가득히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거룩하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죽였다고 직설적으로 선포합니다. 유대인에는 제자들도 포함됐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선포입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자신들은 그 목격자라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그 치유도 자신의 능력이나 경건이 일으킨 일이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일이며,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명백히 증언합니다. 그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마음을 열어’ 깨우쳐 주신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깨우침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 미리 선포해 오신 ‘말씀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제자들도 포함하여) 이 성서의 말씀에 ‘무지’(無知)했습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에 무지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들이 배척하고 죽인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구약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럼 성서는 이제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무지’(無知)했기에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초대합니다. 아직 회개의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의 때를 맞이할 것이라 선포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는 완전한 회복의 날을 예언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무지’(無知)했기에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우리가 인생에서 저지르는 수많은 죄악은 ‘무지’(無知)하기 때문 에 일어납니다. 맞지요? 누구나 지금 가는 길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온전히 안다면 반드시 돌아설 겁니다. 사실 우리는 뭘 좀 안다고 여기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안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자기 경험과 지혜와 인맥으로 인생을 족히 살아갈 수 있다고 한껏 교만을 떨다가, 결국엔 구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인생길에는 반드시 깨달아야할 진리가 있습니다. 반드시 보아야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깨우치면 영원한 생명이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소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고, 얼마나 체험하고 있습니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교회가 전하는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무지’(無知)했기에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른 우리의 죄악을 성령께서 깨우쳐주시거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통해 성서가 누구를 증언하는지를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성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누구든지 죄를 용서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됩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복음, 이것이 성서의 주제입니다. 사도들과 교회는 이 복음을 전파하라고 파송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죄의 회개’를 선포하는 일에 주저하곤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지금의 세상에 맞지 않는다고, 어리석어 보인다고, 걸림돌이라고, 사람들이 우습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사실 십자가와 부활, 회개는 왠지 기분 나쁘고, 무능력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다른 길을 모색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세련되지 못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증언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죄의 회개 말입니다. 실제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의 첫 선포가 “때가 다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복음도 ‘회개하면 죄를 용서 받는다’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의도는 명백했습니다. 복음은 명백합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후예가 될 것인지, 아니면 듣기 좋은 소리를 외치는 다른 이들의 종이 될 것인지를 명백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증인이 되려 하십니까?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행전 3;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