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빕니다.”라고 말이죠.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이제 이 세상에 두고 갈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오늘 본문을 채우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하는 모든 당부의 말씀을 마치고 이제 주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정말 애틋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을까요?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우리가 이 기도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이 제자들을 위한 기도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남겨진 교회를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전체를 다 이야기하기에는 분량이 많고 좀 어렵습니다. 또 복잡하면서도 반복되는 표현이 많아 좀 헷갈립니다만, 기도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11절에 있는데, 짧게 줄이면 이렇습니다.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는 17절로, 역시 짧게 줄이면 이렇습니다.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가 되게 되는 것과 거룩하게 되는 것, 거룩하게 되는 것과 하나가 되는 것, 그 두 가지가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동시에 오늘날 교회를 향한 성령님의 탄식 어린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하나 됨과 거룩함에 관해 말하면 될까요? 하나 됨을 위해서는 분열되어 있는 수많은 교파들과 교단들을 하나로 모으고, 거룩함을 위해서는 정결운동 같은 것을 하면 될까요? 물론 그것들도 중요한 주제이기는 합니다만, 오늘은 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예수님이 함께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하나님께서 행하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신앙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새로운 계명을 제자들과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세상에 남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교회라고 너무나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게 요한복음의 독특한 점입니다. 예수님은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한다고, 성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것 같은데, 그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 같은데, 요한복음을 냉정하게 읽어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남겨두실 작정입니다. 요한복음은 유독 예수님과의 연합과 일치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것을 잘 살펴보면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제자들과 교회를 향하여 말합니다. 이제 나는 없다. 너희가 있다. 너희들 안에
내 말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 안에 너희가, 너희 안에 내가 거하는 방식이라고 말씀합니다. 남겨진 너희가 예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죽으러 가야하는 내 마음이 너무나 무겁지만, 이 일을 위해 내가 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려고 합니다. 좋아서가 아니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 숨고 싶어서 말이죠. 얼마나 자주 우리는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을 되풀이해왔습니까. 공권력을 이용해 불법으로 건물을 세우고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고, 이웃나라에서 지진이나 수천, 수만 명이 죽어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는 예수님이 함께하시기를, 동행하기를 기도하는 우리는 얼마나 못나고 어리석은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탐욕에 관해서는 주체가 되려고 하지만, 타인을 깨닫고 배우는 일에 관해서는 불가능을 주장하며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우리는, 여전히 얼마나 이기적인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는 일입니다. 제사보다는 강도만난 자를 돕는 일입니다. 예배보다 화해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깨닫고, 인식하고, 이해하고, 배우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가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거룩함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남겨두셨고 그에게 무거운 짐을 홀로 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은 똑같이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두겠다고 말합니다. 6절, 그분은 세상에서 우리를 택했고, 11절, 우리는 세상에 있습니다. 14절, 세상은 우리를 미워할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비는 것은 세상에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18절,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하지 않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세상에서 구분해 내는 것, 즉 우리의 거룩함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되어야 할까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부활에 참여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을 우리도 진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보내는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야 할 이 진지함! 그렇지 않음이 만연한 이 세상에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총이 성령감림절에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요한복음 17장 6~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