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연한 봄이 되면서 교회 화단 가꾸는 일이 많아졌는데,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고 나무와 화초를 심고 물을 주고 하는 가운데 예년과 다른 점을 발견했습니다. 죽거나 약해진 화초나 나무가 제법 많다는 것입니다. ‘얘들이 왜 죽었을까? 가을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파리를 떨어뜨리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겨울이 정말 추웠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얼어 죽은 걸까? 냉해를 입었나봐! 그런데 건강한 얘들도 있잖아!’ 또 곰곰이 생각해보니 죽거나 약해진 녀석들은 지난가을 가지치기를 안 해준 녀석들이었습니다. 가지치기를 잘해준 녀석들은 몹시도 추웠던 겨울을 잘 이겨내고 이 봄에 건강한 모습이었고요... 가지치기가 식물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포도나무를 키우시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포도원 농부이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가지라. 참으로 근사한 이 비유로 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포도나무를 키워본 적이 있나요? 저는 어릴 적 집 마당에 큰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해마다 포도가 다 익기도 전에 따먹던 재미가 참 쏠쏠했습니다. 그런데 포도나무를 자세히 보면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덩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가지들을 따로따로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모든 가지가 비비 꼬여 서로에게 말려들어갑니다. 그래서 가지가 어디서 시작되고 또 어디에서 끝나는지 구별해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의 품질은 포도나무와 가지들이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느냐로 판명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제자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포도나무 가지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염두에 두고서, 우리가 예수님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좋은 열매를 끊임없이 맺기 위해 몇 가지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가지들은 열매를 맺는 것이지, 열매를 만드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 15:4~5)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무시하고, 내가 노력해서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자신의 힘으로 열매를 맺고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면, 그 가지는 곧 시들어버려 쓸모없는 가지가 되고 말 뿐입니다. 가지의 사명은 스스로 멋있게 보이거나 주위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 주인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입니다.
둘째, 훌륭한 상품(上品)의 포도송이처럼, 우리가 맺어야 하는 열매는 그 당도와 씹히는 맛이 좋아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라는 근원과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 거하는 가지들로서, 우리는 포도 열매가 아니라 그 포도를 영글게 하는 통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실한 가지들로서 그 본분에 충실하면,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주님의 어지심을 맛보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 어떻게 머물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깊게 하는 영적 훈련, 즉 ‘가지치기’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가지들은 모조리 제거됩니다. 하지만 열매를 풍성히 맺는 가지들도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2절) 가지치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들은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점점 더 많은 잎들과 새로운 가지들을 낳기 쉽습니다. 그 잎들과 가지들 때문에 포도는 소중한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며, 이따금 햇빛까지 가려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농부라면 포도나무 가지의 지나친 성장을 막기 위해 적절히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포도밭에서는, 포도 덩굴이 오늘날처럼 막대기로 잘 지탱되어 있지 않고 땅바닥에서 자연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포도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포도 덩굴을 들어 올려 깨끗하게 잘 가꾸기 위해, 지나치게 성장한 가지들과 죽은 가지들은 가지를 쳐주곤 했지요. 그렇다면 포도나무의 가지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지치기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성서 읽기, 말씀 묵상, 그리고 성서를 통한 기도는 제자들이 가지치기 되는 한 가지 방법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는, 세상을 향한 그분의 은총과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정말 중요한 것에 우리가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면, 우리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막아버리는 유혹과 죄의 곁가지들을 다 잘라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성경을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칼날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히4:12)라고 말했을 때, 그는, 성서는 우리가 온전한 제자직의 삶을 다하기 위해 우리를 가지치기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지치기는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낡은 습관들을 잘라내고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것을 다 도려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지치기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괴롭고 무서운 일이겠지요. 끊어버리는 일,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로서 살아가기 바란다면 그 가지치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지 않겠습니까? 비틀거리든, 주저앉든, 산더미 같은 죄를 지었든 말입니다. 하지만 일단 받아들이신 다음에는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에서 산을 옮길 만한 믿음으로, 이기적인 사랑에서 배려하는 사랑으로, 정욕의 사람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는 아주 훌륭한 농부이시므로 우리가 다듬어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가위와, 맹렬한 풀무불과, 고통의 끌과, 역경의 대패와, 끈질긴 기다림, 그리고 조건 없는 용서.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가위질에서 우리는 맛없는 들 포도나무에서 아주 실하게 영근 맛좋은 참 포도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반죽에서 우리는 진흙에서 보배로운 토기가 되고, 하나님의 기다림에서 우리는 집 떠난 아들에서 집으로 돌아온 당당한 아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공급에서 우리는 길 잃은 양에서 튼튼하고 건강한 양이 됩니다. 하나님의 우정에서 우리는 종에서 예수님의 친구가 됩니다. 영혼을 다듬는 농부의 손길은 부드럽지만 누구든, 언제든, 무엇이든 변화시킬 정도로 강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탐욕은 절제가 되고, 정욕은 사랑이 되며, 억지로 하는 의무감은 기꺼이 하는 순종이 되는 것입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요한복음 15장 1~8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