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8-06-02 (토)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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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좋은 나무가 되라 ”

우리는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을 말할 때, 우선 1738년 올더스게이트 사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웨슬리 목사님은 자기 일생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1725년을 언급합니다. 이 해는 웨슬리가 목사 안수를 받고 자신의 일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결단을 한 해입니다. 그 해 웨슬리 목사님은 토마스 아 캠피스나 제레미 테일러의 책을 읽고 경건 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자신의 일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결단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웨슬리는 옥스퍼드대학교 홀리클럽을 통해서 경건 생활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 ‘메도디스트’(규칙쟁이들)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메도디스트(감리교인)라는 우리의 정체성은 1738년 올더스게이트가 아닌 1920년대 말 홀리클럽에서 웨슬리와 그의 동료들이 보여준 신앙생활에서 찾아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뜨겁게 체험한 올더스게이트 대 각성 이후, 그 계기를 마련해준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본거지인 독일의 헤른후트로 갑니다. 그러나 몇 달간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그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결별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물론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 덕분에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들에게는 구원 받은 후에 이어지는 거룩한 삶과,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선한 열매에 대한 노력이 빠져 있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신앙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의 체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각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우리 감리교회 신앙의 제일 중요한 고백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웨슬리 목사님은 그의 표준설교 제일 처음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지요. 그가 홀리클럽을 통해 추구했던 경건한 삶의 열매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선한 열매를 맺는 것 또한 감리교인의 중요한 모습이었습니다.

웨슬리의 산상수훈 설교를 보면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 잘 알 수 있는데, 가장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심령의 가난함’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온전히 채워지지 못한 채 부족하고 황폐한 상태로,

굶주린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영혼이 굶주린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이 메말라 죽어가고 있는데도,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으며 우리의 도움이 되시며 구세주가 되신다는 고백은, 틀림없는 우리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신앙인으로서 구원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오직 주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는 분임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신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의 첫 걸음은, ①영혼의 갈급함을 느끼는 것, ②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신뢰, ③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선한 분이라는 신뢰, 이 세 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20절)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수확철이 되었을 때 밭에 있는 나무가 좋은 감나무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네, 실한 열매를 보고 압니다. 그럼 그 나무에는 왜 사과가 아니라 감이 달려있지요? 네, 감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감이라는 열매는 그 나무에게 감나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 주고, 감나무는 감이라는 열매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냅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의 열매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열매 맺는 삶을 지금까지 잘못 가르쳐 왔습니다. 열매라는 것을 교회 봉사, 기도, 헌금, 모임 참석 등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는 것으로만 국한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밤을 세워가며 철야기도를 한다고 우리를 참된 신앙인이라 부르지도 않을 뿐더러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고 우리의 신앙을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열매를 맺는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든 것은, 자신이 감나무인데 사과를 맺는 흉내를 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감나무에는 자연스럽게 좋은 감이 달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신앙의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먼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히지 않겠습니까.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마태복음 7장 21~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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