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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행복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 힘들고 괴로운 일이 적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 좋은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어 아직은 살만한 것 같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든 하나님과의 관계든 관계 속에 중요한 것은 신뢰(信賴,)입니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의 인간관계와 신앙은 더욱 성숙해지겠지요. 그래서일까요? 참으로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아픈 현실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그 아픔을 견뎌내는 힘이 됩니다. 이런 힘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우선 ‘들음’에서 나오고, 그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복음인데, ‘복음’은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고요. 그래서 사람은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성서는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 1:16~17)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일 것입니다. 오늘 이 거룩한 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을 위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온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큰 은총이 임하기를 빕니다.
요즘 설교자마다 앞을 다투어 ‘영성 회복’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게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내야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가요? 우리에게 가능하겠습니까? 아쉽게도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에 괘념치 않고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 모습은 이 세상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아가려는 의지를 잃어버렸기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모두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언제나 섬김을 받으려 하는 우리입니다. ‘뭐, 대충 그렇게 살아도 되겠지..’ 하는 우리의 안일한 생각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것을 가로막는 문제는 모두 우리의 나태함과 안일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 섬김의 표상인 주님은 잊어버리고 교회와 교우들 위에 군림하려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와 평신도는 결국 똑같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님의 생각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입니다. 섬김의 논리가 아니라 세상의 논리가 이미 교회 안에 뿌리를 내렸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현대 교회는 목회자 중심에서 평신도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역할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모두의 본분이며, 그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고 함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저마다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갈 때 교회와 교우들은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평화 없이 정말 세상의 평화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중심에 우리가 지어야 할 십자가가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목표가 그리스도의 뜻에 맞는지를 분별하고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늘 바라봅시다. 그리고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고 그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길이라 믿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해야 합니다. 또한 각자의 형편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무늬만 교인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가며 서로를 돕고 배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일원으로서 서로 섬기는 자세로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미안합니다.”는 말을 아낌없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고 섬기는 자세로 소통하는 공동체가 성숙한 교회입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가진 것으로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훌륭한 교회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세상 일 때문에 교회에 참여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이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다가가는 공동체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복음을 전하며 우리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교회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참된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해야 할까요? 바로 우리들입니다! 평신도주일을 맞이해서 함께 다짐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겠습니다!” 이런 다짐이 오늘 우리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에 모두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다짐만 요란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평신도주일은 “주님을 닮겠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선한 이웃이 되어 사랑으로 섬기는 주일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고 다가가서 치료해주고 나귀에 태워 여관에 옮기고 전적인 책임을 지려했던 사마리아 사람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주일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작은 일부터, 나부터 행할 때 우리는 훗날 주님의 천국 잔치에 초대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름 받은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법’으로 알고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서로 짐을 지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니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우리 교회의 평신도인 여러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자랑이자 기쁨입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갈라디아서 6장 2~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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