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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부근에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가버나움, 게네사렛, 막달라, 디베랴가 이 호수를 낀 마을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이런 갈릴리라는 지역적인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하는 냉소를 받았던 갈릴리 나사렛이 바로 예수님의 운명을 결정지은 고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 생각과는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회적인 기득권도 없었으며, 이렇다 할 업적도 없으신,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가 만들어놓은 어떤 고정된 틀을 벗겨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갈릴리 나사렛은 어디일까요? 이번 사순절은 우리의 영적 고향을 잘 찾고 그곳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원래 죄가 없는 분이시며, 그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신데, 왜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이 사실에 대해 우리는 몇 가지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① 세례자 요한에게서 구원의 빛을 보았을 지도 모릅니다. 요한의 세례야말로 ‘사람이 새로워지는 능력’이라고 말입니다. ② 예수님은 아직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확신이 있었는데도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약간 이상하니까 말입니다. ③ 예수님은 자신을 보통 사람으로 낮추신다는 뜻으로 세례를 받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온 것일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의 삶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사실에서도 일관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세례 사건이 말하려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살과 피를 갖고,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야 하는, 그래서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할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의 이런 인간성을 의심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신성만을 주장했던 가현설을 이단으로 척결할 정도의 결연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기독교의 역사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신앙, 교부들의 신앙, 그리고 지난 2천년의 세월 동안 활동했던 신앙의 선배들에게 아주 큰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의 신앙의 유산이 없이 오늘의 우리가 가능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가 기독교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신학과 기독교 영성을 도외시한 채, 현재의 신앙경험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순절 동안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모습은 ‘빚진 자’입니다. 복음에 빚진 자,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빚진 자입니다. 또한 ‘위로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과 삶의 고단함을 갖고 사셨으니, 심지어 세례도 받으셨으니, 우리의 힘들고 괴롭고 슬프고 답답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세례를 받으신 이 놀라운 사건이 우리 모두의 생명의 양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물리칠 능력이 있는 예수님에게는 시험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같은 분이 하나님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시험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슨 뜻일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시험은 몸이 있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지만 동시에 우리처럼 몸을 지닌 분이기 때문에 이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지는 않지만 광야에서 뿐만 아니라 예상컨대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내내 시험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몸과 영혼이 하나로 묶여 사는 우리는 결코 시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크고 작은 시험이 우리의 삶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아무도 시험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험을 이기는 사람도 있고 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이긴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고 힘이 셉니다. 그러나 그 사탄의 권세는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시험도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순절에는 이미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삽시다. 우리의 삶에 괴롬도 있고 슬픔도 있고 고통도 있지만, 끝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마가복음 1장 9~15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