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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부활절이 돌아왔고, 부활하신 주님을 소리 높여 찬송하는 오늘, 우리는 모두 ‘부활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상도 부활의 빈 십자가를 교회 전통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부활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불쑥 일어나는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 삶을 이끌어오던 십자가, 그 삶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고난이 없는 부활은, 십자가의 삶이 없는 부활의 기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이방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고전1:22~23)
여러분, 예수님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충실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 당신의 사명에 대해 그릇된 것과 타협하지 않는 충실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에의 충실함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충실한 삶의 결과는 바로 고통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연히, 어쩔 수 없어서, 판단 착오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충실한 삶의 결과로 십자가에 매달리고 처형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슬픔과 고통과 그리고 희망에 전적으로 함께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억울하게 고통 받는 사람들, 불의하게 억압당하는 사람들, 약하고 소외된 자들, 심지어는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의 삶과 인간이 겪는 온갖 고통과 슬픔과 치욕과 죽음에까지 함께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쳐다볼 때마다 인간의 삶에 깊숙이 내려오셔서, 인간의 삶에 동반자가 되어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삶과는 동떨어진, 인간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드시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의한 지배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던 예수님께서 이제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축배의 잔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패 속에, 절망 속에,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결국 아들의 편이심을, 당신께서는 결국 진리와 정의의 편이심을 부활로써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불의가 정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미움과 이기적인 욕심이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죽음이 생명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실히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부활은 십자가의 삶을 해석해 주는 열쇠’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삶은 실패요, 고통의 절규요, 절망의 끝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부활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삶은 승리를 위한 삶이요,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과 죽음의 권세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생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또한 ‘십자가는 부활을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십자가의 피 흘림과 고통이 없는 부활은, 참된 부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의 십자가를 부여잡고, 그 십자가의 삶을 따름으로 더욱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 그래서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확신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슬프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단한 세상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은, 더 이상 절망과 고통의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시고, 우리가 겪게 되는 온갖 어려움과 유혹과 고통과 슬픔에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넘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절망이 희망을 이기지 못하고, 불의가 정의를 이기지 못하고, 미움이 사랑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이 생명을 이기지 못함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분명히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공짜로 얻은 기쁨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과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 그 충실한 삶의 결과이며 완성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다운 부활의 기쁨과 그 생명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의 삶을 충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과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길을 충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충실한 사랑의 길을 따라 살아갈 때 부활의 참된 생명은 우리 안에 분명히 잉태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 안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그리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진실하게 사랑하며 자신의 소박한 사랑으로 더욱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참된 생명, 그 풍요로운 생명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부활이요 우리의 기쁨인 줄 믿습니다.
어둠을 깨고 빛으로 오신 부활의 주님, 주님의 크신 은총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이 은총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 세상은 아직도 전쟁의 광기가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경시합니다. 죽임의 문화가 판을 칩니다. 죄악이 만연합니다... 진실로 부활하신 주님, 부활신앙이 아니고서는 지금 이 시대의 죄악을 치유할 길이 없음을 압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께 간절히 비오니,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하옵소서. 전쟁과 불의의 폭력 속에 죽어가는 이들이 없게 하옵소서. 더 이상 죽음의 세력들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시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노래가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여서, 어둠과 두려움과 절망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라도 주님의 부활, 그 기쁨과 희망이 전해질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스승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요한복음 20:19~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