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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합니다. 그러다보면 서로의 이해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고 때로는 논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개인과 사회는 물론이요 교회 역시 그런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유롭기는커녕 그런 논쟁으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종종 생겨납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문제를 풀어나갈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기준으로 ‘양심’과 ‘공동체성’을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기의 생각과 주장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살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면서 연약한 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 사도의 입장이자 권면이었습니다. 즉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지식의 문제’로만 접근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자랑하게 하고 자기만을 생각하게 하나, ‘사랑’은 자기 옆에 있는 이웃을 돌아보게 하고 그를 존중하며 그와 더불어 자기의 것을 나누게 합니다. ‘지식’은 틈만 보이면 비판하지만, ‘사랑’은 그 틈난 공간을 메꾸어 나갑니다. ‘지식’은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게 함으로써 열등감 속에서 비굴하게 만들거나 우월감으로 오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허락하신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분과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만들게 합니다. ‘지식’은 곧 분노하는 열등감과 자랑하는 교만으로 사람들을 파괴하지만, ‘사랑’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향해 열려져 있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때로는 그 자유가 제한되거나 유보될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사람들을 상처 나게 하고 죽이는 특권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치유하고 살리는 능력으로서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그 예수님을 본받는 사도 바울이 고난과 역경의 자리에 들어간 것도 다 스스로 원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자유가, 사람들을 구원하고 살리는 진정한 자유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이렇게 신앙생활 합시다. 무엇인가를 주장하기에 앞서 양심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올바른 믿음에 부합한 것인지를 숙고합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생각에는 옳고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이가 있다면 즉시 멈추어 섭시다. 그것이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요 온전한 사랑이며, 모든 형제가 구원 받는 길입니다.▣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고린도전서 8장 1~1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