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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손에 쟁기를 잡은 자’(누가9:62)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인류의 쟁깃날로 오신 주님은 뼈대만 남은, 숨 쉴 틈조차 없는 바리새적인 경건의 품에서는 어떤 생명도 자랄 수 없음을 꿰뚫어보셨습니다.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관행은 언제나 독이 되어 우리를 정신이 나태한 사람으로 만들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속박이 되어 다른 이의 마음까지 옭아매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굳은 마음 밭을 갈아엎는 쟁깃날이고, 얽매임을 끊어내는 정신의 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딱딱한 율법 조문을 이제 던져버리면 됩니까? 모세도 십계명 돌판을 내던졌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무엇이냐고요? 이게 자유라고요? 마음대로 해도 된단 말입니까? 은총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는데, 율법이라는 누더기는 벗어버리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가 어느 정도였기 예수님은 지금 그들을 두둔하는 것일까요? 서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율법)을 지키도록 이끄는 역할을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사소한 데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정확하게 지키는 전통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문화와 전통을 정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율법의 참 뜻을 보여주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엄격한 삶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義)입니다. 물론 이것은 외적인 행위 규정을 더 철저하게 지키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핵심은, 우리 영혼의 중심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거룩한 소명입니다. 훌륭한 성도란, 또 부모란,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준행하는 것입니다.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마태복음 5:1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