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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사건 때문에 복음이 시작되고 새로운 일이 시작됩니다. 새해의 시작도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리 결심을 해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새해가 되었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결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상식과 관습을 내세우고, 조상을 들먹이고,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는 한, 늘 부끄러움을 갖고 숨어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적대감을 품고 비뚤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나오지 않는 시간에 열심히 물을 길으러 나오지만 진정한 행복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선물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선물은 우물에서 바가지로 퍼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이란 그냥 물이 아니라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마침내 그 여인의 입에서 기다리던 말이 나옵니다.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뜻밖에도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너라.” 하십니다. “남편이 없는데요?” “옳다! 너에게는 남편이 없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있지도 않은 허깨비의 무게에 짓눌려 살지 말아라!” 예수님은 그 여인이 부끄러워하거나 아파할 수도 있는 문제까지 깊이 파고들어가서 곪은 것을 터뜨려버리셨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교육도, 혁명도 아닙니다.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에서 새롭게 대하며, 마지막 남은 허깨비의 무게마저 날려버리고, 감동과 떨림이 있는 본래의 자신과 부딪치고 만나는 방식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 안에서 생명의 샘물이 터져 솟아오르게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요한복음 4: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