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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닦아드렸던 굉장히 당황스러운 행동은, 예수님의 임박한 죽음과 장례와 연관된 사건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헌신적인 예배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하게 됩니다. ‘나는 정말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가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복되고 향기 나는 사람은 구원받은 죄인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역겹고 냄새나는 사람은 타락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셔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늘 그리스도와 닮아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을 쓰신 분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챙기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 마리아가 치르는 희생이 더 귀하고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행동하는 자선사업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려서(희생)라도 그분을 높여드리고 그분이 말씀하시도록 내가 더 철저하게 낮아지는 것입니다. 정말 궁금한 것은, 같은 사건을 두고 어째서 유다를 비롯한 거기 있던 몇몇 사람과 예수님의 반응이 이렇게 다른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유다와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마리아의 행동을 건너다보았고, 예수님은 마리아의 자리에서 그 행위를 들여다본 것입니다. 그 비싼 기름 때문에 마리아를 다시 보게 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마음 깊은 곳에 들어있는 아낌없는 ‘사랑’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말하는데 있지 않고 사는데 있으며, 종교는 설교가 아니라 삶이어야 하며, 기독교의 진리는 믿음보다 사랑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지극한 사랑을 보시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매우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 지난주일 설교 중에서 (요한복음 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