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호라, 나는 곤고한(비참한) 사람이로다 (로마 7:18~25) - 로마서 묵상 22 바울은 한 입으로 그(極)과 극(極)을 이루는 두 가지 고백을 합니다. 하나는 갈라2:20의 고백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7:19~20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바울은 이 모순(矛盾)을 한 몸에 지니고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모순을 극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모순덩어리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극복하자!) 18절 :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이 말을 풀어서 읽으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그것을 실천할 만한 힘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 있는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가14:38) 몸(육신)에는 자체의 의지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오랜 습관에 절어 있어서, 마음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전에 하던 대로 움직이려는 성향을 지닐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늘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이 약하도다”는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육신은 강한 것도 아니고 약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깨어있을 때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만, 잠들어 있을 때는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전자를 강하다고 하고 후자를 약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을 잔 것은, 그날 밤 그의 몸이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잠을 잤기 때문에 깨어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깨어있지 못했기에 잠을 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밝히 알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몸으로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선택하고 결단할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19절 : 엄살도 아니고 빈말도 아닙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임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던 바울로서는 ‘하기 힘든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고백 덕분에 바울은 참된 사도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가 사도인 것은, 그의 유능함 때문이 아니라 ‘무능함 때문’입니다. 20절 : 예를 들어, 화가 났을 때 내가 화를 낸다기보다는 화가 나를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태산 같은 ‘힘’ 또는 ‘성향’에 부닥칩니다. 따라서 “내 속에 거하는 죄”는, 내가 불러들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내 몸에 들어와 있는 원초적인 성향입니다.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어쩌지 못할 거대한 장벽이요 흐름인 것입니다. 21절 : 성선설이 옳다면 성악설도 옳습니다. 선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어서 어둠이 있는 것입니다. 태양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몸에 이와 같은 ‘법’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옛 어른 말씀에 “무엇을 좋아하면서 그것의 나쁜 점을 알고, 무엇을 싫어하면서 그것의 좋은 점을 아는 자는 세상에서 드물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을 통해 깨달은바 성선이면서 성악인 자기 존재의 비밀에 대한 분명한 인식 덕분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기가 병들었음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의사를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모순됨을 알기에, 예수님을 찾습니다. 22~23절 :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듯이 그분의 형상으로 빚어진 인간도 영, 마음, 몸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입니다. 영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오직 그 법을 따르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의 영이 이 점에서 똑같습니다. 영은 몸과 마음이 자기의 뜻에 따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 지금 바울은 자기 몸속에서 갈등하는 ‘두 힘’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靈)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법을 따르는 겉 사람(肉)의 힘입니다. 이 ‘두 힘’의 줄다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죄인이라면, 거기서 해방된 사람이 곧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해방’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24~25절 : “아, 나라는 존재야말로 얼마나 불쌍한 물건인지! 누가 나를 이 몸에서 그리고 죽음의 올무에서 건져줄 것인가? 오, 하느님, 고맙습니다. 저에게는 저를 구원하실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옵니다! 그러니까 나로 말하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고 싶으면서 몸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그런 자라는 말씀입니다.” - 이현주 목사 사역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