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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거울 (로마 7:7~17) - 로마서 묵상 21 여기 도둑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일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法)이 없다면, 그는 죄를 지으면서 자기가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 “법이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연 사람이 죄를 지시게 하는 것이 법일까요? 7~8절 : 거울은 얼굴에 묻은 걸 보여줄 뿐입니다. 거울을 치운다고 해서 얼굴에 묻은 게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법과 죄의 관계가 그와 같습니다. 법을 무시한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거울이 없으면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몸에 때가 묻어 있음을 알아야 그것을 닦아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거울이 몸을 깨끗이 하는 데 도움이 되듯이, 율법도 죄를 씻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법(계명)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죄로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이때 죄가 기회를 탄다는 말은, 사람이 죄를 지을 만한 틈이 생겼을 때 놓치지 않고 그리로 사람을 이끈다는 말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야기)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법)이 없었다면 그의 행위가 어떻게 죄가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9~10절 : 법이 없으면 무슨 짓을 해도 허용이 됩니다. 식인종은 사람을 잡아먹는데, 그 사회에서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식인을 금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식인을 금하는 법을 만들면 그때부터 그들은 죄인이 되어, 이전에 마음대로 살던 삶을 잃게 됩니다. 죄는 살고 사람이 죽는 것이지요. 그러면 법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선가요? 아닙니다. 거울이 사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듯이, 법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법이 죄에 의해 이용됨으로써, 오히려 사람을 죽음에 이르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11~12절 : 죄가 기회를 타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이끈 다음, 살인을 금하는 법으로 옭아매어서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가인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을 죄인으로 만든 것은 율법도 계명도 아닙니다. 죄가 그를 속여서,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인의 잘못은 죄로부터 속은 것이었습니다. ‘네가 아무리 나를 화나게 해도 나는 너의 언행을 보는 대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다!’ 가인이 만일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다면,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는 욕된 이름을 얻는 대신, 인류 최초의 성인(聖人)이 되었을 것입니다. 13절 : (로마8:28을 다같이 읽는다) 이 말이 진실일진데,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죄로 드러나고 그래서 마침내 죽게 된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든 것’에 포함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넘어지지 않은 자를 일으킬 수 없고, 잠들지 않은 자를 깨울 수 없고, 죽게 되지 않은 자를 살려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를 죄로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거룩한 계명의 선한 사명입니다. 따라서 계명은 “죄로 심히 죄 되게 하여” 결국 죄인으로 하여금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게 합니다. 14~15절 : 바울이 말하는 육신이란, 인간의 살과 피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아담의 몸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제 몸을 자기 뜻대로 부리지 못합니다. 예컨대 자기 뜻대로 감정을 내지 못하고 오히려 감정의 부림을 당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자기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부립니다. 그래서 화를 낼 때는 화를 내고 기뻐할 때는 기뻐하는데,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합니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은 화를 내던지 기뻐하든지 자신의 감정에 휘둘림으로써,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다치게 합니다. 16~17절 :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원치 않으면서 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금지한 율법의 정당성을 반증(反證)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일을 하는 까닭은, 스스로 내 몸을 다스리지 못하고 오히려 ‘죄’로 하여금 주인 노릇을 하도록 내 몸을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포악한 군주라도 시체를 자기 앞에 복종시킬 수는 없습니다. 죄와 사람의 관계가 그와 같으니,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을 죄짓게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죄가 사람을 죄짓게 할 수 없다면 그 죄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분은 죄에 대하여 스스로 죽음으로써 죄를 무력하게 만든 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분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죄에 대하여 죽을 때 함께 죽고(그래서 죄를 죽이고), 그분이 의에 대하여 살아나실 때 함께 살아나는(그래서 의를 살리는) 사람, 그가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