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천천히
작성일 2012-12-18 (화)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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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림절 셋째 주, 화요일 ”
    
비(非)이원론적 사고
 

"예수께서는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하고 말씀하셨다."(마태21:27)
 
  우리는 열정적으로 간절하게 마음을 쓰면서 동시에 무심할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그것만큼 쉽게 이루어지는 소원이 없을 것이다. 일의 성공이나 남들의 반응 따위에 관심이 없는 그런 때에 비로소 우리는 마음을 쓰면서 무심할 수 있다. 그것이 참된 영적 자유다.
  과연 우리는 그런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가? 허튼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하지만 모든 위대한 영적 가르침이 그와 같은 역설을 담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예수가 인격이면서 신격이라고 믿는다. 마리아는 처녀이면서 어머니다. 성만찬의 면병은 빵이면서 예수의 몸이다. 하느님은 셋이면서 하나시다. 이 모두가 논리로는 말이 안 된다. 그래서 합리적인 사람은 받아들 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 차원에서는 진실일 수 있고 저 차원에서는 진실일 수 없다. 오늘 읽은 복음서의 예수처럼, 서로 다른 차원의 진실을 함께 보고 들을 줄 아는 게 지혜다. 그분은 역설과 부정적인 인간들을 동시에 지혜롭게 다룰 줄 아는 고전적인 비(非)이원론 사상가다. 이원론으로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 수도, 용서할 수도, 참아줄 수도 없다.
  예수는 이원론적 머리 구조를 가진 자들이 적의를 품고 당신을 거짓 양분법으로 처단하려 할 때, 그들 장단에 놀아나기를 거절하신다. 그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그분은 침묵하거나 화재를 바꾸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질문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그들의 명백한 악의에 휘말리기를 거절하신다. 누가 무엇을 반대한다면, 본인이 바로 그 반대하는 것을 비치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그분은 아신다. 그래서 지금 예수는 대답을 거절하시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완벽한 답을 주시는 분으로 예수를 보는 것은 진짜 놀랄 만한 일이다. 실제로 그런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분은 인간이 만든 딜레마의 뿔과 뿔 사이로 우리를 곧장 밀어 넣으시고 거기에서, 우리 자신한테 정직하면서 하느님을 만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문제를 풀어주기보다는 더 큰 문제들을 던지신다. 그것들은 전부-아니면-전무로 생각하는 머리로는 풀 수 없고, 오직 사랑과 용서로만 풀어질 수 있는 문제들이다.
 
|되묻기|
- 내 인생에서 풀어지지 않을 것 같은 역설들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감성적으로? 지성적으로? 아니면 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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