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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희망이다 (로마 2:17~29) - 로마서 묵상 9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대 아래 있음을 말하고 나서, 유대인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이방인과 달리 ‘율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참 유대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님을 논증합니다. / 율법을 머리로 아는 것은 문제도 해답도 아닙니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 문제요 해답입니다. 17~20절 : 맹자는 남한테 선생 노릇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탈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큰 스승이 되시어 많은 제자를 가르치신 것은, 당신 스스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당신 뜻대로 오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오신 것입니다(요한8:42).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 입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죽은 뒤에야)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한 8:28). 사람들 병을 고쳐주신 것도 마지못해서였고, 가나 마을에서 기적을 이루신 것도 마지못해서였고, 십자가를 지신 것도 마지못해서였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일하시기에 그분과 함께 일을 했지만, 한 번도 아버지를 앞지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유대인을 자처하는 자들은 참으로 뻔뻔스럽게 자기 의를 내세웁니다. “우리는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분의 뜻을 알고 율법을 배워서 사리 분별도 잘하고 눈먼 자들에게는 길잡이요 어둠 속에서 헤매는 자들에게는 빛이요 무식한 자들의 지도자요 철부지의 스승이다!” 노자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는 자는 빛나지 않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功)이 없고, 스스로 으스대는 자는 우두머리가 되지 못한다.” 무슨 긴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스스로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치고 과연 잘난 사람이 있겠습니까. 21~24절 : 본문에는 없지만 각 문장 앞에 ‘왜’ 또는 ‘어째서’하는 의문사를 넣어 읽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질문 형식으로 쓴 것은, 그들이 그러는 까닭을 정말 몰라서였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지금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도자와 스승을 자처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들의 행실이 어땠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굳이 가을까지 기다려 열매를 보고 나서야 나무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이 열두 번 곤두박질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 하나 있거니와, 스스로 나서서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참 지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지 못해 앞장을 서게 된 뒤에 “나는 따르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은 질이 다른 얘기입니다. 죄인의 괴수를 자처한 바울도 같은 입으로 “나를 본받으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25절 : 법 이전에 범법(犯法)이 있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살인을 했다는 얘깁니다. 법보다 더 뿌리 깊은 범법을 법으로 다스린다는 것이 처음부터 안 될 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법을 만드는 것은, 가장 좋은 길을 잃었기에 그 길을 되찾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차선(次善)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법을 완전하게 지킨다는 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유대인 사내아이는 법에 할례(割禮)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할례를 받았다거나 베풀었다는 말은 법을 지켰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는 것이 곧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할례 말고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규정이 법조문에 들어있고, ‘하나’를 어긴 것은 ‘모두’를 어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이 있는 한 인간은 범법자로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법을 더욱 강화할까요? 아니면 차라리 법을 없앨까요? 둘 다 해결책은 아닙니다. / 사람이 거듭나는 것, 그래서 잃었던 가장 좋은 길을 되찾는 것, 희망은 거기에 있습니다. 참으로 사람만이 희망인 것입니다. 26~29절 : 법을 어기는 사람에서 법을 지키는 사람으로가 아니라, 법을 지키는 사람에서 법 없이 사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잃었던 ‘큰길’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그 길’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그 길은 죽는 자리까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길이었습니다(빌립2:7~8). 사람이 만일 자기 뜻을 비우고 다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간다면 그에게 무슨 법이 새삼 필요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테니, 따로 사람한테 인정받기를 기대할 이유 또한 없으니, 그것을 가리켜 진정 ‘자유로운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무슨무슨 조항에 얽매이지 않고, 수많은 교리와 율법이 필요 없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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