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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12월2일)부터 주님 오심을 대망하는 강림절(대강절,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올해는 '리처드 로어' 신부의 묵상집을 얻었는데, 강림절 첫째 주일부터 성탄절까지 발행처인 '드림'의 허락을 받아 날마다 이곳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별빛을 바라보며 함께 가는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동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말> 오래 전에 나는 '크리스마스 준비'라는 주제로 강좌를 가졌는데, 성 안토니 메신저 출판사가 그 내용을 녹음 테이프로 내주었다. 여러 해 동안 그것이 꾸준히 팔리자, 출판사에서 인쇄된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해왔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 소책자다. 본디 강의에서 나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감상적인 크리스마스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메시지를 어떻게 우리 삶과 사회에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했다. 우리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 몸으로 되심'이 곧 '구원'이라고 믿어왔다. 하느님이 예수의 출생을 통하여, 우리가 사람으로 난 것은 좋은 일이며 당신이 늘 우리 편임을 보여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강좌에서 나는 이 어른 크리스마스와 예수의 실천적 메시지가 우리에게 너무도 절박하게 필요한지라, 더는 크리스마스 절기와 강림절 준비를 묽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것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예수는 당신의 메시지를, 당신이 말씀하신 "하느님 통치" 또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到來)에 결부시키셨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순종, 만남, 성숙 또는 성경과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공부를 우리에게 별로 요구하지 않는, 어린 아기의 달콤한 출생을 회상하는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만다. 실제로 인간관계에서 확인하듯이, 감상적으로 한껏 고조된 정서들이 실천적 인간관계를 회피하거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가톨릭은 우리를 실존적으로 바꾸거나 자신의 에고를 의심하게 할 힘이 거의 없는 개인적 경건으로, 하느님의 말씀과 그 메시지의 실천적 요구를 회피하고 싶은 유혹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먼저 우리를 마주 대하고, 그 다음에 우리를 바꿔놓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유치한 아기 복음과 아기 예수가 감당하기에는 오늘 이 지구별에서 벌어지는 고통과 불의와 착취가 너무 심하다. "예수는 모든 창조의 주인이시다!" 옳다. 이것이 초대교회들의 한결같은 부르짖음이었다.(빌2:11, 행2:36, 롬1:4) 성경의 마지막 구절인 "오소서, 주 예수여!"(계22:20)도 바로 이 우주적 어른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 인생과 거대한 하나의 '강림'인 교회의 생명을 이루는 것이다. 이 작은 책자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기도한다. 기억하자, "언제나 강림절이다." 모든 날들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