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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그에 해당하는 값이 있습니다. 부모들이 겪는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자녀들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자녀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 값을 계산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돈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워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지 운이 좋으면 힘들이지 않고도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에서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것도, 또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운이 좋으면 힘들이지 않고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전쟁을 일으키려면, 먼저 자기 나라가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군사력이 있는가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싸워봤자 승산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 나라는 전쟁을 하기보다는 평화협상을 먼저 생각하겠지요. 또한 건축업자가 어떤 건물을 지으면서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될 것이지를 미리 따져보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도 그 안에 들어있는 영양분과 음식의 열량과 그 가격이 얼마인가까지 따져가며 먹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 비용을 계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값이 있으며 공짜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특히 교회에서는 하기 힘든 말입니다. 교회성장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교회가 ‘이용자의 편의를 중심으로’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용자의 편의중심주의’란 교회에서는 누구든 그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것을 즉각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찬송가도 누구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것만 불러야 하고, 상업광고의 노래처럼 외우기도 쉬워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목사의 모든 설교도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듣는 사람의 배경이나 경험과는 상관없이 쉽게 가슴에 와 닿는 설교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교회성장 원리들과, 규모가 큰 교회들 사이에는 분명히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교회들은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는 성공의 표시가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 ‘큰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결코 편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찌르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과연 값을 계산하여 치러가면서까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예수에 관해 말하기는 쉽지만,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수많은 집회가 열리고, 수많은 성경공부 교재와 그 방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세미나와 수많은 제자훈련, 수많은 교회당 안의 편의시설을 사람들은 지금껏 교회 안에서 누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교회가 교회다워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많은 교회들이 내용은 없이 포장만 화려하게 장식한다면 그것은 곧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겠지요. 그러므로 이용자 편의주의로, 좋은 게 좋은 거라 식으로, 그저 여가생활 하듯이 신앙생활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신앙은 아무런 값도 지불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것이 아닙니다.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중요한 것들에는 값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그 값은 바로 ‘제자직’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온갖 신앙의 편의주의를 과감하게 떨쳐버리십시오. 우리가 이것만이라도 지켜나간다면, 아니 이것부터 지켜나간다면, 우리는 분명히 이 시대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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