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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복음 (로마 1:15~16a) - 로마서 묵상 4 “그러므로 나의 간절한 소원은,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로마에 계신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 공동번역 사도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 로마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여러모로 얼굴이 서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왜 그렇게 수치스러운 대상이 되고 있었던 것일까요? - 그러면서도 사도 바울이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우선 로마에서 기독교 복음이 수치스러운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이렇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그의 고백에서, 당시의 문학작품과 성서의 단순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비교해 보니, 성서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볼 때, 성서는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에서나 읽는다면 읽을 수 있는 별 볼 일 없는 책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어거스틴이 성서의 심오함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또한 바울의 시대에 로마의 철학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고, 반면 성서의 메시지는 논리적이지도 않았고 설득력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강한 힘을 숭배하는 로마의 사상에 비추어 보면, 예수의 십자가는 너무도 무력한 이상주의에 불과했고, 이를 신앙으로 삼는 기독교인들이 로마가 지배하는 유대인들이라는 점도 기독교 복음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그런 로마의 화려한 문명과 비교해 볼 때 무척이나 초라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끌 만한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런 까닭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일까요? - 아닙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로마서를 읽어나가다 보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람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하나하나 지적합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는가? ......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롬1:18~23) 로마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복음 자체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수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현실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로마서)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은 1장 8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로마 사회에서 드러내고 있는 복음의 현실은 자랑스러운 것이 못되었고,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오늘날에도 복음의 능력이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기가 어렵고, 기독교인들의 완고한 독선과 이기주의로 인해 복음의 가능성에 대해서 자칫 회의가 들게 됩니다. 복음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기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귀중하게 여기고, 어디서든지 전해야겠다는 열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런 현실 앞에서 복음에 대해 회의하지 않았으며, 머뭇거리지도 않았습니다. 매우 단호하게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고 증언합니다. 기독교인의 현실과 교회의 오늘이 혹 부끄러울지라도, “복음은 결코 부끄럽지 않으며, 세상에 거리낌 없이 내어놓을 수 있는 믿음의 선물이다.” 이를 담대하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