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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공부 ② - 국제 결혼 여성 (룻기 1:3~6) 문학 기법(技法) 십여 년 이민 생활이 한두 절에 담겨 있는가 하면(1:3~5), 하룻밤의 사건이 한 장(3:1~18)에 ?룻이 보아스와 가까워짐 - 상세히 기록되기도 하는 것이 룻기에 나타나는 문학적 기법이다. 룻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어떤 부분에서는 지루하리만큼 상세히 진술되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생략이 심하고 사건 진행이 급히 묘사되기 때문에, 사건들 사이의 시간적 거리감이 없어지거나 모호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한 가정에 비극이 일어났다. 귀향길 나오미는 아직 모압 지방에 살면서 ‘한 소문’을 듣게 된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이다(6절). 그런데 여기서 양식은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준 구호양곡과는 다르다. 히브리어 원문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먹을거리를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농사가 잘 되게 하셨다’는 뜻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아마 ‘풍년을 주셨다’고 생각하면, 1절의 흉년과 잘 어울릴 것이다. 생각해보기 1. 나오미는 남편도 아들도 손자도 없이 홀로 남겨져 있다. 나오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착한 며느리가 있었고, 하나님이 언제나 가까이 계셨다. 우리도 그렇다.. 2.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고 했다. 당신은 이를 진심으로(전적으로) 믿고 사는가? 네, 이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룻기 공부 ③ - 길 위의 세 여인 (룻기 1:6~10) 길을 떠나는 세 여인 남편을 여윈 며느리를 어머니의 집으로 보낸다고 한 진술(8절)은 예사스러운 것이 아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과부가 되었을 때 유다는 며느리더러 아버지의 집에 가 있으라고 말한다. 그래서 다말은 그 말대로 아버지의 집에 가 있는다(창38:11). 과부가 된 경우에도 그러하지만, 이혼을 당한 경우에도 혼자된 여인은 아버지의 집(親庭)에 가서 산다(레22:13).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룻기에만 이러한 경우에 어머니의 집으로 되어 있다.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말한 것 가운데 너희가 죽은 자와 나(즉 산 자)를 ‘선대한(한결같이 사랑하여준-새 / 그토록 고맙게 해준-공) 것 같이’라는 말이 나온다(8절). 여기에서 ‘죽은 자를 선대했다’는 것은 며느리들이 남편들이 죽은 후에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위해 어떤 선한 일을 했다는 말이 아니다. 말론과 기룐이 살아있던 동안에 그들의 아내들이 남편에게 잘해주었다는 말이다. 두 여인은 좋은 아내요, 훌륭한 며느리였다는 말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가자마자 남편이 죽고, 거기서 두 아들을 미국 여자들과 결혼시켜 미국인 며느리들을 보았다고 치자. 그런데 그만 두 아들마저 죽고 두 며느리만 남았는데, 시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려 하자 미국인 며느리들이 한국인 시어머니를 따라나서는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미국 여인 대신 일본이나 베트남, 필리핀 여인이라도 좋다. 그 여인들이 낯선 곳에 가서 산다고 할 때, 그들이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큰며느리 룻과 작은며느리 오르바의 결심이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생각해보기 1. 부부관계, 고부 관계는 등만 돌리면 결국 남남이라 하는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서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며느리들을 친딸같이, 시어머니를 친정엄마같이! 이것이 새로운 가족관계의 아름다움이다. 2. 외국인 남자들(군인을 포함하여)과 사는 우리나라 여인들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시 잘 알지 못하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무엇이든 잘 모르면 오해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상대방의 자리에서 이해해주고 늘 세워 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