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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화가 나신 이유 (마태 16:21~28) - 비대면 가정예배 설교 (요약)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과 구원의 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베드로의 길은 탄탄대로였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촌구석의 한 어부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을 받고 결국에는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뒤에 하신 부활에 대한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베드로는 자신 있게 말했지요.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하나님의 자비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잘못된 사랑이 베드로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베드로의 사랑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예수님의 삶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탄’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런 매정함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가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을 보게 하십니다. “네가 사랑한 것은 내가 아니다. 바로 네 마음속의 욕심이다.”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앞으로 자신이 누리게 될 영광에만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시면’이라는 조건을 내세웁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해주어도, 구원의 뜻과 영생의 안식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어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한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살았다면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일만 생각했기에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했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취하지 않고,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부활하시어 모든 사람의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며 진짜 사랑하는 길임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 하나님의 일을 잃어버리고 사람의 일만을 도모하는 교회와 신앙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빠진 우리 사회를 살리는 길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사랑과 평화와 생명을 살리는)을 기꺼이 세우는 데 있습니다. ▣ (그림 : 제임스 티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