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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공부 ⑥ - 이방에서의 여인의 생존 (룻기 2:8~13) 룻에게 호감을 갖는 보아스 처음 만난 남자가 보여주는 의외의 친절에 룻은 그만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룻2:10)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룻에게는 이미 계획된 일이었거나, 상당히 큰 확률로 기대했던 일입니다. 이 이야기 2장 서두에서(2절)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내가 밭으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 이삭을 줍겠나이다.”(룻2:2)라고 하던 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이라고 하던 기대와 계산은,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에서 현실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룻은 대담한 여인입니다. 여기에서도 룻은 보아스의 호의에 단순히 고맙다고만 응답하지 않고, 자기가 외국 여자라는 것을 밝히면서 어째서 자기 같은 미천한 여자에게 그러한 호의를 베푸냐고 물어서, 상대방의 응답을 또 유도하고 있습니다. 보아스에게 계속 말을 걸 뿐 아니라, 그에게 말을 하도록 재촉합니다. 그러나 지금 룻은 보아스가 이방의 여인인 자기 때문에 모세의 계명을 어기고 있음을 은연중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곧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신24장), 그래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데(신24:3~4), 결국 룻은, 보아스가 “이제, 댁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주실 것이오.”(표준새번역, 룻2:12)라고 하는 말을 해버리도록 유도하고 맙니다. 보아스의 대답을 들어보면, 그가 룻에 대해서 무얼 알고 있었는지, 또 룻에 대한 그의 기대가 어떠한 것인지를 말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과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며느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과부가 된 다음에도 시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룻이 친정 부모와 고국을 떠나 남편 나라의 백성이 되겠다고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오게 된 것도 알고 있습니다(11절). 그래서 그는 룻이 잘 되기를 빕니다. 룻의 선행을 여호와께서 갚아주실 것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렇게 되기를 빌어줍니다(12절). 이야기가 진전됨에 따라, 결국 하나님께서 룻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은 보아스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그렇게 호의를 보이자 룻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아주 강력한 요청을 합니다. 보아스더러 계속 자기에게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13절). 생각해보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당신도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인간관계를 잘 다녀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좋든 싫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룻기 공부 ⑦ - 먹거리 / 기업 무를 자 (룻기 2:14~23) 며느리의 재혼을 주선하는 시어머니 룻은, 주운 곡식을 시어머니 앞에 내놓았으나 시어머니의 관심은 딴 곳에 있습니다.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하였느냐?”고 묻습니다. 어디서 주웠는지 알아서 무엇할 것입니까? 어디서 주웠든 많이 주웠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나오미의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오미의 관심은 어떤 사람(보아스)에 가 있습니다. 룻이 어디서 이삭을 주웠습니까? 룻이 어디서 일하였습니까? 보아스의 밭에서였습니다. 룻을 돌봐주었기에 복 받을 자가 누구입니까? 보아스입니다. 그러고서야 룻은 시어머니에게 보아스라는 이름을 밝힙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한 번 더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또 그를 칭찬합니다. “그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그러면서 나오미는 보아스가 누군지, 그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며느리에게 밝힙니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것과 우리의 ‘기업(基業) 무를 자’(맡아야 할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기업 무를 자 “기업(基業) 무를 자”란, 룻기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업 무를 자’나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라하’나 ‘무르다’의 표현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업’이라는 명사나 ‘무르다’라는 동사가, 오늘 우리가 이해하는 일반적인 뜻과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 무를 자”라고 할 때 ‘기업’은, 우리가 흔히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일컬을 때 쓰는 바랄 기(企)의 기업(企業)이 아니라, 우리가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터 기(基)의 기업(基業)입니다. 이 ‘기업’은 대대로 물리어 내려오는 재산이나 사업을 일컫습니다. “무르다”라는 동사도 그렇게 쉬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산’ 물건을 되돌려주고, 값으로 치렀던 돈을 되찾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는 ‘판’ 물건(밭,집,몸)을 도로 찾고, 값으로 받았던 돈을 샀던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것을 뜻합니다. 생각해보기 1. 하나님은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 하나님은 항상 약속을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어도 이를 하나님이 나에게서 돌아서신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보아스는 신실한 사람입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믿음직하고 착실하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믿음직스럽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항상 신실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