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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공부 ⑫ - 오벳의 탄생 (룻기 4:13~17) 나오미와 오벳 룻기 저자의 문학 기법 가운데 하나를 우리는 룻기 4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기업 무를 자의 권리와 의무를 법 절차를 밟아 확보한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데려옵니다. 4장 13절에는 몇 개의 중요한 동사가 사건의 급한 전개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데리고 와서, 아내로 삼고, 동침하니 룻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아들을 낳기까지는 그냥 단숨에 한 절 안에 다 진술해버리고 맙니다. 숨이 가쁜 진행입니다.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가 했는데, 벌써 새 남편에게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시 나오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벳을 나오미가 품에 안고 키웁니다. 나오미에게는 새로 태어난 이 아이가 나오미의 고엘(기업 무를 자)입니다.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입니다. 나오미의 노년의 봉양자입니다. 나오미의 아들입니다. 오벳이라는 이름 오벳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구약 안에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 곧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 말고도, 여라므엘의 자손으로 에블랄의 아들(대상2:25,37), 다윗 왕의 용사들 가운데 한 사람(대상11:47), 고라 족속으로 오벳에돔의 손자이며 스마야의 아들로서 예루살렘 성전 문지기였던 사람(대상26:7), 백부장 아사랴의 아버지(대하23:1) 등 모두 다섯 명이나 됩니다. 오벳이라는 이름은 일꾼, 종, 섬기는 자를 뜻합니다. 오바댜(야훼의 종)라는 이름의 단축형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생각해보기 룻은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인도 덕분에 안식처를 찾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에게서 안식처를 찾습니까? 오벳(일꾼,종,섬기는 자)이라는 이름이 룻기와 잘 들어맞습니다. 그러면 진실로 섬기는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또 조건 없는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비록 결혼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지만, 아이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고 살고 있습니까?
룻기 공부 ⑬ - 다윗 조상의 계보 (룻기 4:18~22) 메시아의 계보 룻기 끝에 붙어있는 이 조상의 계보에 관해서는 의견이 많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본래의 이야기에는 없던 것이었는데 후대에 누군가가 첨가한 것이라느니, 본래부터 있던 것이라느니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계보는 단순히 한 가문의 계보가 아니라 왕조의 계보입니다. 베레스(창46:12)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다윗 왕의 계보를 야곱이나 유다에서부터 진술하지 않고 중간의 베레스에서부터 시작한 것도 참 이상합니다. 베레스를 중요한 인물로 여긴 것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축하하여 말할 때도 베레스의 집안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룻4:12). 그러니까 <룻기>의 저자는 조상의 계보에서도 베레스를 다윗 왕조의 기초를 닦은 조상으로 승격시켰고, 축복 선언에서도 복 받은 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했습니다. 다윗 왕조의 기초를 놓은 이가 바로 복 받은 사람 베레스였다는 것입니다. 베레스와 예수의 계보 예수의 계보에는 시아버지와 관계하여 두 아들을 낳은 가나안 여인 다말이 있습니다(마1:3). 여리고의 창녀 라합이 있습니다(마1:15). 모압 여인 룻이 있습니다(마1:15). 역시 이방인인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가 있습니다(마1:6).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이들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는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가 태어납니다(마1:16).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입니다(눅3:23).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고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께서는 활동하시기 직전에 고향 나사렛을 떠나셔서 이방인의 땅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십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를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의 갈릴리, 어둠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새번역/마태4:15~17) 생각해보기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어떤 행동이나 자격보다 앞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실 때 종종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도 역시 자격이 없지만, 그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