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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공부 ④ - 룻과 나오미 (룻기 1:15~19a) 남편과 두 아들을 여읜 나오미 여인들만 홀로 남습니다. 그 무렵 나오미는 그의 고향 땅에 먹거리가 넉넉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모압을 떠날 채비를 합니다. 나오미로서는 두 젊은 며느리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문제입니다. 시형제 결혼을 시킬 아들들도 없는 터여서, 젊은 며느리들을 각자의 친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거기에 가서 새 남편을 만나 새 가정을 꾸미고 잘살게 되기를 마음에서입니다. 작은며느리 오르바는 끝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설득되어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큰며느리(룻)에게도 손아래 동서(同壻)가 갔듯이 너도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룻과 함께 귀향하는 나오미 그런데 시어머니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큰며느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정한 뜻을 조금도 굽히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룻은 시어머니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비록 룻을 설득시켜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실패하였지만,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서 놀라운 사랑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룻1:16~17). 룻이 한 말 가운데 “머물겠나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숙(留宿)하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나오미가 비록 정착하지 못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지 못한 채 여생을 남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 신세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고달픈 삶마저 함께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생사마저 같이하겠다는 말에서 룻의 성실성은 절정에 이릅니다. 젊고 어진 며느리인 룻의 모습이 그의 고백 속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착한 며느리를 가진 시어머니 나오미는, 비록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다 잃고 홀로 남았다 하더라도, 이 어진 며느리가 그의 곁에 있는 한 남은 인생이 결코 외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 며느리에게서 이토록 갸륵한 위로와 격려와 희열에 가득 찬, 살맛 나게 하는 말을 듣는 행운을 잡은 시어머니는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해보기 1.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또한 자녀들은 부보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본문에 나오는 룻처럼 진실한(성실한) 사랑을 갖고 대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룻과 같이 진실한 사랑과 표현할 줄 아는 사랑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힘과 소망을 또 다른 사람(사건)을 통해서 주십니다. 그 또 다른 사람이 누구일까요?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서 찾기를 바랍니다. 또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살아가기 바랍니다. 룻기 공부 ⑤ - 룻이 보아스를 만나던 날 (룻기 2:1~7) 보아스의 밭으로 가는 룻 룻은 대담한 여성입니다. 단순한 효부(孝婦)가 아닙니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된 몸이면서도 시어머니의 재혼 권유도 뿌리치고 외국인 시어머니를 따랐던 모압 여인 룻에게서 우리는 착한 며느리를 봅니다. 그러나 2장으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룻의 전혀 다른 모습을 봅니다. 사뭇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룻의 새로운 면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이삭을 주으러 가도 되냐고 묻습니다(2절). 여기에서부터 벌써 수상합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한 말은, 히브리어 문법 형태로 볼 때, 정중하게 허락을 간청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나서는 젊은 과부 룻을 두고서 ‘뽕도 따고 임도 본다.’는 우리의 속담을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룻기 2장의 본문 자체도 그 지방의 유력한 남자인 보아스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룻과의 극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보아스가 소개되고, 2절에서는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가겠다고 나서고, 3절에서는 나오미가 룻에게 이삭을 주우러 가라고 흔쾌히 허락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는, 룻이 간 곳이 보아스의 밭이고, 때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오고(4절), 거기서 룻을 만나고(5절), 밀 수확을 감독하는 젊은이(사환)에게서 룻에 관하여 소개도 받고(6절), 더욱 놀랍게도 룻이 보아스가 오기까지 그를 계획적으로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까지 봅니다(7절). 이 이야기의 저자도 룻과 보아스를 만나게 하려고 하고, 시어머니 나오미도 룻과 보아스를 만나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룻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보아스를 만날 계획을 세우고 추진합니다. 7절에 보아스가 데리고 있던 젊은이(사환)가 보아스에게 한 말은 아주 묘합니다. 룻이 자기에게 와서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룻이 과부이면서 동시에 외국인 나그네였으므로, 누구에게 허락을 받을 것도 없이 수확이 끝난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룻은 일부러 보아스의 사환에게 가서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인이 아닌 사환이 허락할 사항이 아닙니다. 15절을 보면 보아스가 비로소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도록 허락합니다. 룻이 이런 사정을 몰랐을까요? 룻은 어쩌면 보아스가 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기 1. 룻이 보아스의 밭에 오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요? 그 사건을 당한 사람의 처지에서는 우연이고, 그것을 보내신 분의 관점에서는 섭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우연처럼 지나가는 일상의 많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또 느끼며 삽니까? 세상에는 저절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